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정부합동 특별감사반이 3월9일 발표한 농협중앙회의 실태는 가히 '비리 종합 세트'라 불릴 만하다.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의 취임 과정과 그 이후의 행보는 공공 조직의 장이라기보다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절대자에 가까웠다.
강호동 회장의 혐의는 역대 회장들의 수법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선거 도움에 대한 보답(사업비 유용)'과 '지역 조합의 상납(황금열쇠)'은 농협의 고질적인 '금권 선거'와 '상명하복식 부패 구조'를 상징한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4억9천만원 규모의 선거 답례품 제공 의혹은 농협의 선거가 얼마나 금품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농협재단의 사업비가 회장의 사적 정치자금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농협이 여전히 '회장 개인의 전리품'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농협재단 핵심 간부 A씨는 재단 사업비 4억 9천만 원을 빼돌려 강 회장의 선거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골프대회 협찬과 답례품을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농민을 위해 쓰여야 할 재단 기금이 회장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매표 행위'의 뒷자금으로 유용된 것이다. 심지어 중앙회 부서들도 공금을 유용해 회장에게 상칠할 선물을 마련하는 등 조직 전체가 '회장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 황금열쇠 10돈과 사택 가구…간부들의 도를 넘은 ‘사치 행각’
강 회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지역조합으로부터 580만원 상당의 황금열쇠 10돈을 수수해 청탁금지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이는 단순 선물을 넘어 지역 조합에 대한 중앙회장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대가를 주고받는 '금권 통치'의 전형이다.
핵심 간부들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재단 사업비와 포상금을 개인 사택의 가구와 사치품 구매, 심지어 자녀 결혼식 비용으로 사용하는 등 공공 예산을 개인 통장처럼 사용했다. 내부 통제 장치가 완전히 마비된 결과다.
■ 30년을 이어온 ‘포토라인’의 저주… 역대 회장 비리 연표
농협중앙회장이 자산 수백조 원을 주무르며 '농도(農道)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동안, 그 왕좌는 사법 처리의 지름길이 되었다. 강호동 회장의 이번 비리 혐의는 역대 회장들이 보여준 ‘권력 사유화’의 판박이다.
< 역대 농협중앙회장 주요 비리 및 사법처리 현황 >
| 회장 명 | 주요 비리 혐의 | 최종 결과 | |
| 1·2대 | 한호선 | 비자금 조성 및 뇌물 수수 | 구속 및 실형 |
| 3대 | 원철희 | 비자금 조성 및 공금 횡령 | 구속 및 실형 |
| 4대 | 정대근 | 양재동 부지 매각 관련 수억 원 뇌물 수수 | 구속 및 실형 |
| 5대 | 최원병 | 측근 비리 및 친인척 특혜 대출 의혹 | 검찰 고강도 수사 |
| 6대 | 이성희 | (재임 중 논란 및 셀프 연임 시도 등) | 감사 및 견제 지속 |
| 7대 | 강호동 | 황금열쇠 수수, 선거 답례품 유용, 부실 대출 개입 | 수사 의뢰 (진행 중) |
■ ‘전관예우’가 부른 금융 부패…145억원 공중에 날릴 판
금융 부문의 도덕적 해이는 농협의 건전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2022년, 농협중앙회는 냉동식품 신설 법인에 145억원의 거액 신용대출을 집행했으나 현재 연체 상태다. 상환 능력 심사는 부실했고, 배후에는 농협경제지주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
또한 퇴직 임원들이 재취업한 B캐피탈에 수백억 원의 지분 투자와 한도 대출을 몰아주는 등 노골적인 '전관 특혜'가 확인됐다. 이 과정에 개입한 인사는 이후 상호금융 임원으로 복귀하는 등 '비리-재취업-영전'으로 이어지는 카르텔이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농협의 방만한 예산 관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앙회 예산의 60%가 지출 항목조차 정해지지 않은 '유보예산'으로 편성되어 회장의 쌈짓돈처럼 쓰였다. 퇴직 시 지급되는 황금열쇠와 전별금, 1인당 1천만원에 달하는 조합장들의 호화 해외 연수는 조직 내부의 비판 목소리를 잠재우는 '입막음용'으로 활용됐다.
■ 농협의 헌법 ‘농협법’…“영리보다 권익이 우선”
농협 조직의 설치 목적과 운영 원칙을 규정한 최상위 법령은 ‘농업협동조합법’이다. 이 법 제1조는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반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과 달리, 농협은 '상부상조'와 '이용자 중심'의 협동조합 원칙을 법적으로 강제받는다. 따라서 중앙회장이나 임원이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는 행위는 단순한 배임을 넘어 법 제정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중대 범죄로 간주된다.
농협법에 따르면 중앙회장은 대외적으로 농협을 대표하며, 이사회의 의장을 맡는다. 특히 회장은 농협의 사업 부문인 경제지주와 금융지주의 경영 전반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번 감사에서 지적된 '유보예산'이나 '수의계약' 관련 부조리는, 회장에게 집중된 인사권과 예산 집행권이라는 법적 권한이 내부 견제 장치 없이 남용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부작용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개혁안의 핵심도 바로 이 회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데 있다.
강호동 회장의 '황금열쇠 수수'나 '공금 유용' 혐의는 크게 두 가지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농협중앙회장은 '공직자등'에 해당하여 직무와 관련하여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을 수수할 수 없다. 황금열쇠 10돈(약 580만 원) 수령은 이 법 위반의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
△ 농협법 제164조(감독):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협 임원이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할 경우 해당 임원에 대해 '개선(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수사 결과에 따라 강 회장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행정 처분의 근거다.
정부개혁추진단이 준비 중인 후속 조치는 결국 농협법 개정으로 귀결된다.
△ 선거법 강화: 조합장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현행 간선제·직선제 혼합 구조에서 금품 선거를 막기 위한 위탁선거법 위반 처벌 수위 상향.
△ 내부 통제 법제화: 중앙회 내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지출 내역이 불분명한 예산 편성을 금지하는 조항 신설.
■ 정부 ‘농협 개혁방안’의 핵심 쟁점 3가지
정부는 이번 감사를 계기로 농식품부를 중심으로 '농협개혁추진단'을 구성해 근본적인 수술에 나섰다.
금품 선거의 온상이 된 현행 선거제를 개선하고, 선거 과정에서의 공금 유용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중앙회장의 무소불위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유보예산' 비중을 대폭 축소하여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계열사 대출 심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퇴직 임원이 재취업한 업체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와 특혜성 투자를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농협은 그동안 수차례 개혁을 외쳤으나, 회장이 바뀔 때마다 '제왕적 권력'의 유혹에 무너졌다. 비리 연루자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중앙회장의 인사·대출 전권을 박탈하고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체질을 개선하지 않는 한 30년 잔혹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개혁안이 농협의 '황금열쇠'를 뺏고 농민의 '희망'을 돌려줄 수 있을지, 200만 조합원과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