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들에게 AI 사용을 금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권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공부와 일에 연결하는 능력 역시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도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지키게 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 AI에게 묻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AI를 활용한 뒤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함께 설명하도록 한다. 처음에는 번거롭다고 느끼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 한 가지를 깨닫는다. AI는 답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자기 생각까지 대신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 모범답안의 시대는 끝났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오랫동안 정해진 길을 잘 따라간다는 뜻에 가까웠다. 교과서를 성실히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문제집을 여러 번 풀고, 시험지 위에 정답을 정확히 적어내는 사람을 우리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 불렀다. 틀리지 않는 사람이 우수한 사람이었고, 빠르게 외우는 사람이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AI는 방대한 지식을 모으고, 요약하고, 비교하며, 논리적인 문장으로 정리한다. 사람이 며칠 걸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과 배재고 야구부의 응원 구호 논란이 며칠 사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기업의 부적절한 마케팅과 학생들의 치기 어린 응원 구호 문제로 보였던 이 사건은 정치권의 공방으로 번졌고, 대통령의 언급과 대통령 직속 위원회 인사의 발언까지 이어지며 증폭되었다. 이제 이 문제는 스타벅스만의 문제도, 배재고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마주한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 표현의 자유와 책임 사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이다. 헌법이 이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듣기 좋은 말만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말, 틀린 말, 다수의 정서와 어긋나는 말이라도 자유로운 논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걸러질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표현이 무제한 보호될 수는 없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폭력을 선동하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지만, 책임 없는 자유는 공동체를 흔드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은 이 문제 앞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미국은 ‘사상의 시장
최근 베네수엘라와 일본 북부 해역에서 잇따라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두 지역 모두 큰 흔들림을 겪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일본은 비교적 제한적인 피해에 그친 반면, 베네수엘라에서는 건물 붕괴와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진의 규모만 놓고 보면 자연현상은 비슷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 재난의 차이를 가르는 힘, 레질리언스 핵심은 레질리언스, 즉 회복탄력성이다. 레질리언스는 단순히 재난을 견디는 힘만을 뜻하지 않는다. 충격을 받았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고, 무너진 기능을 빠르게 회복하며,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더 나은 상태로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다. 도시와 국가의 레질리언스는 건물의 내진성능, 조기경보 체계, 행정의 대응 속도, 시민의 안전의식, 공동체의 협력 수준이 함께 작동할 때 만들어진다. 결국 재난 앞에서 중요한 것은 “충격이 오느냐, 오지 않느냐”가 아니다. 그 충격을 사회가 얼마나 흡수하고, 얼마나 빨리 회복하며,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얼마나 배워 나가느냐이다. ■ 유리공 사회와 떨튀공 사회 나는 레질리언스가 있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를 설명하기 위해
최근 반도체 산업의 회복세로 국가 세수가 예상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라 살림에 여유가 생긴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지금의 세수 호황은 경제의 기초 체력이 근본적으로 개선된 결과라기보다, 특정 산업의 사이클이 가져온 일시적 성과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계로 비유하면 연말 보너스와 같다.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닌데, 한 번 들어온 보너스를 매달 들어올 고정 수입처럼 여기고 씀씀이를 늘린다면 가정 경제는 금세 흔들리기 마련이다. 국가 재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 성과급에 취해 고정 지출을 늘리는 위험 문제는 초과 세수가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치권의 관성이다. 새로운 지원금, 각종 현금성 정책, 단기 인기 사업들이 앞다퉈 거론된다. 당장은 환호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러한 사업들은 한 번 시작되면 예산 구조를 경직시키고 좀처럼 줄이기 어렵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은 국가 재정에서도 경계해야 할 현상이다. 모두의 자산인 국가 재정을 각자의 정치적 성과를 위해 경쟁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하면, 결국 공동체 전체의 미래 대응 능력은 약화된다. 재정이 더 이상 안전판이 아니라 부담의 원천으로
윤철순 칼럼니스트 |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과의 마지막 자선 오찬 경매가 최근 135억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세상을 흔들었다. 얼핏 보면 제정신인가 싶다. 아무리 세계적인 투자자와의 식사라지만, 한 끼 밥값이 135억 원이라니. 하지만 자본은 원래 그런 생물이다. 돈은 돈 냄새를 맡고 움직인다. 낙찰자는 단순히 밥값을 지불한 게 아닐 것이다. 세계 최고 투자자와의 네트워크, 상징성, 브랜드 가치, 글로벌 주목도, 그리고 그 이상의 무형 자산을 계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 논리로 보면 어쩌면 합리적 투자일 수 있다. 문제는 따로 있다. 135억짜리 점심 얘기 뒤편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폐지를 줍는다. 서울 변두리 새벽 골목엔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이 여전히 넘쳐난다. 로또 1등에 당첨돼도 서울에서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다. 청년들은 “벼락거지”라는 자조를 입에 달고 살고, 월급은 통장을 스친다. 그런데도 세상은 연일 “코스피 8000 시대”를 외친다. 증시는 불기둥처럼 치솟고 AI와 반도체는 새로운 황금 광맥이 됐다. 누군가는 하루 만에 수억원을 벌었다며 인증 사진을 올리고, 누군가는 그 불기둥을 멍하니 바라보다 상대적 박탈감에
장승래 칼럼니스트 | 대기업에서 20여 년을 일한 뒤 스타트업을 창업한 나에게, 회사라는 울타리도 브랜드라는 보호막도 없이 오롯이 ‘나’라는 이름으로 시장과 맞서는 일은 마치 사막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은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이 해볼 만하다고 느끼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훨씬 더 강한 경쟁력을 발휘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은 넉넉한 자금도, 풍부한 인재도, 충분한 시간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 죽기 살기로 버티는 간절함,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을 향한 집요함이 스타트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이다. 창업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첫 상용 앱 "디버"를 만들어냈다. 함께 대기업을 나와 창업한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여전히 대기업에 있었다면 이런 속도가 가능했을까?” 아마 기획서 결재 단계에서만 수개월이 흘렀을 것이다. 예산을 조율하는 데에도, 관련 부서와 협의하는 데에도 또 수개월이 걸렸을지 모른다. 어쩌면 출시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경제타임스 박철수 칼럼니스트 | 최근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산업혁명의 압축판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생성형 AI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 단순한 업무 자동화 수준을 넘어 산업의 구조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생산과 유통, 소비와 고객 응대, 데이터 분석과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이 AI라는 거대한 흐름 속으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거대해질수록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필자가 풀필먼트 사업을 시작하며 오랫동안 마음속에 새겨온 표현이 있다. 바로 “물심동류(物心同流)”다. 물건과 마음이 함께 흐른다는 뜻이다. 물류(物流)와 SCM(Supply Chain Management)의 본질을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을 아직 보지 못했다. 물류는 흔히 물건을 이동시키는 기능적 산업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물류의 본질은 훨씬 깊다. 고객은 단지 상품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기업의 책임감과 배려, 신뢰와 태도를 함께 경험한다. 같은 상품이라
안후중 칼럼니스트 | 호르무즈(Hormuz) 해협 안쪽 아랍에미리트 인근 해역에서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던 우리 화물선의 좌현 기관실에서 한 발의 폭발음이 울렸다. 한국 시간 5월4일 저녁8시40분, HMM이 운용하는 다목적 운반선 ‘나무(NAMU)’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24명의 선원은 모두 무사했지만, 이 폭발음의 진짜 의미는 선체 손상 그 이상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글을 올렸다. “이란이 한국 화물선 등 무관한 국가들을 향해 발포했다”고, 그리고 “한국도 이 작전에 합류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적었다. 우리 외교부가 사실관계 확인을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니다. 사실관계가 확정되기 전에 가해자와 처방이 동시에 단정된 채 동맹국으로부터 결단을 요구받는 새로운 외교 문법, 그 문법이 한반도까지 도달했다는 점이 본질이다. ■ 첫 번째 질문 — 사실은 누가 정하는가 외교는 사실 위에 서 있는 건축물이다. 사실관계가 확정돼야 책임소재가 정해지고, 책임이 정해져야 대응이 결정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게시물 한 줄이 외교
안후중 칼럼니스트 |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26년 4월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한 직후의 일이다. 표결은 8대 4. 공식 반대 4명은 1992년 10월 이후 34년 만에 처음 보는 풍경이다. 숫자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는 무겁다. 미국 중앙은행이 '합의의 시대'를 마감하고 '분열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번 분열은 단순한 매파-비둘기파 구도가 아니다. 스티븐 마이런 이사는 홀로 0.25%포인트 인하를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그가 인공지능(AI) 기반 생산성 향상으로 중립금리가 낮아졌다는 논리를 펼치는 동안, 베스 해먹 클리블랜드 연준 총재, 닐 카슈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준 총재, 로리 로건 댈러스 연준 총재는 정반대 방향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동결에는 동의하나 성명서의 '완화적 기조(easing bias)' 문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 회의에서 정반대 방향의 반대 의견이 동시에 나왔다는 사실, 그것이 지금 연준의 자화상이다. 파월 의장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한마디를 남겼다. "에너지 가격
윤철순 칼럼니스트 | 기후위기가 세계 해양 질서를 흔들고 있다. 얼어붙어 있던 북극 바다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국제 물류와 에너지 전략의 판도 역시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한국도 마침내 이 변화에 국가 차원의 첫 발을 내디뎠다. 국회는 5월7일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북극항로를 단순 해운 노선이 아닌 조선·에너지·항만·물류·극지기술 산업과 연결된 국가 전략산업으로 공식 규정한 첫 입법이다. 사실상 ‘한국형 북극 전략’의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8일 울산에서는 울산항만공사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북극항로 시대, 울산항 탄소중립 에너지 물류허브 구축 전략’ 포럼이 열렸다. 시점 상 이번 특별법 통과 후 가장 먼저 현실 전략을 제시한 현장 논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최근 글로벌 해상 물류망은 홍해 사태와 호르무즈 리스크, 파나마 운하 가뭄까지 겹치며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북극항로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다. 하지만 북극항로의 의미는 단순한 거리 단축에 있지 않다. 친환경 연료 공급 능력과 극지 대응 기술, 에너지 저장 역량까지 요구되는 새로운 전략 공간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향후 항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