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이준오 기자 |
인공지능(AI)이 미국의 일자리 지형과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AI로 빠르게 대체하면서 블루칼라 일자리에 구직자가 몰리는 등 일자리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AI는 또 경제 성장을 견인하면서도 데이터센터 급증에 따른 높은 에너지 비용으로 새로운 위기를 낳고 있다는 진단이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24일 미국의 취업 전선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전국학생정보센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봄 직업훈련학교 입학자는 전년 동기대비 12% 증가했다. 이는 대졸자의 4% 증가폭을 크게 웃돈 수치로, 배관·용접·전기 등 현장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안정 일자리’로 부상한 영향이다.
시장조사업체 콘조인트리가 올해 Z세대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대학 학위가 있으면 장기적인 고용안정이 보장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16%에 그쳤다. 반면 “자동화되기 어려운 일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답변은 77%에 달했다.
일자리에 대한 시각 변화의 배경엔 기업들의 AI 도입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대졸자가 주로 취업하는 사무직 회사원, 관리자, 회계사, 변호사, 교사, 연구원 등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AI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4%대 초반의 완전고용 수준이지만, 20~24세 대졸자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7.5%에서 올해 8월 9.2%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IT 분야에서 인력 감축이 두드러진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지난 8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2~27세 컴퓨터공학과 및 컴퓨터과학과 졸업생의 실업률은 각각 4.3%, 6.1%로, 철학(3.2%)이나 미술사(3%) 등 인문학 전공자보다 높았다.
미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의 ‘2025 기술 인재 보고서’에서도 빅테크 기업 신규 채용의 7%만이 신입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집계됐다. 15%를 웃돌았던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스탠포드대 연구진은 AI 붐 이후 소프트웨어(SW) 개발 분야에서 22~25세의 고용이 2022년 말 정점과 비교할 때 올해 7월 20% 줄었다고 분석했다.
포드자동차의 짐 팔리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지난 6월 “AI 때문에 화이트컬러 고용이 반감할 것”이라며 숙련된 기술인력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직업훈련학교로 학생이 몰리는 현상을 환영했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도 같은 달 자사 직원들에게 “생성형 AI 도입이 진행됨에 따라 효율성이 향상돼 앞으로 수년간 직원 수가 줄어들 것”이라며 “(우리는) AI 도입에 따른 고용 상실의 초기 단계를 목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용 상실 징후에도 미 경제는 수치상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맥킨지는 올해 4월 전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가 2030년까지 5조 2,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가 지난 8월 7조달러로 상향했다. 미국 내 전체 투자의 40%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데이터센터 투자 급증은 또 다른 부작용도 낳고 있다.
맥킨지는 “건설업과 발전업에 투자가 치우치면서 제조업이나 도시 인프라 등 다른 산업이 인력 확보 경쟁에서 밀려나는 ‘클라우딩 아웃’이 일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설비에 자본과 인력이 집중되면서 노동 수요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미제조업협회에 따르면 미 제조업 부문은 2033년까지 약 380만명의 새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그중 절반인 190만명이 채워지지 않을 것으로 추산됐다.
협회는 “미 경제 성장과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블루칼라 인력 부족이 미 경제의 구조적 위험으로 번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일며 전력 수요가 폭증했다는 점도 문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미국 전체 전력 소비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전력난 및 전기요금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버지니아주 볼티모어 지역의 가정용 전력요금은 최근 5년새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천연자원보호협회는 북동부 일부 주에서 2028년까지 월 70달러 수준의 전기요금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센터는 약 2년 만에 건설할 수 있지만 발전소 신설은 5~10년이 소요되는 만큼, 폐쇄 예정이던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을 연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AI 혁신에 따른 변화가 너무 가파르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정치적 결단이 맞물려 제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올해 ‘AI 행동계획’을 발표하며 조 바이든 전 행정부의 안전 중심 정책에서 속도 중심 전략으로 전환한 바 있다.
중국의 AI 굴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연구개발(R&D)·반도체 인프라 투자 완화를 통해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스탠포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AI 선두 모델 격차는 지난 2월 기준 1.7%로 좁혀졌다.
문제는 과도한 경쟁으로 안전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AI 연구 선구자인 조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는 “치열해진 국가 간 AI 경쟁이 안전성 희생을 야기할 수 있다”며 “통제 불능의 위험, 사이버 공격 등 공공 안전 및 국가안보 위험을 초래해 승자 없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