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단순한 암호화폐 거래 수단으로 여겨졌던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금융 패권 경쟁의 핵심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와 JP모건, 블랙록 등 전통 금융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디지털 자산 내재화' 전략이 맞물리면서, 스테이블코인이 AI(인공지능) 결제, 실물자산 토큰화(RWA, Real World Assets) 등 全 산업을 아우르는 '新 금융 인프라'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KB증권 김지원 연구위원은 12월5일 이니텍 세미나실에서 '제337회 도산아카데미 스마트포럼 강연'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전통 금융 시스템과의 경계를 허물고 '온체인 금융' 시대를 열고 있다며, 한국 금융 당국의 신속한 규제 정비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 美 재무부, 2조 달러 로드맵 제시하며 패권 확보 사활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이미 전체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9% 비중을 차지하며 독자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규모가 아니다. 미국 재무부가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2026년까지 약 2조 달러(약 2경 7천억 원) 규모로 7배 이상 성장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공식적으로 내비쳤다는 점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 배경에 미국 국채 수요 확대와 디지털 달러 패권 유지가 자리한다고 분석했다. 테더(USDT)와 서클(USDC)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는 이미 여러 국가를 넘어섰다. 미국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을 국채의 영구적인 수요처로 활용함과 동시에,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9.9%를 장악한 달러 기반 패권을 디지털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정책적 의지는 규제 속도에서도 드러난다. '지니어 섹트(Genie Act)'는 미국의 디지털 자산 산업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고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움직임의 상징이다. 2024년 7월 18일 법안 제정 이후, 미국 정부는 백악관의 권고와 함께 주요 금융 규제 기관인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증권거래위원회)와 CFTC(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일사불란하게 규제 정비에 착수했다.
금융 기업들이 디지털 자산에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시장을 미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명확한 정책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 한국, '발행 주체' 논쟁에 발목…이자 금지 조항도 쟁점
반면 한국은 디지털 자산 기본법 마련 단계에서부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두고 은행권과 비은행권(빅테크) 사이의 첨예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논의는 은행이 5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컨소시엄에만 발행을 허용하고, 은행 예금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이자 지급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의 시스템이 편리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효용이 낮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는 국내에 국한된 시각"이라며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한국이 규제 유연성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시장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JP모건은 비밀리에 준비 완료…기업들의 '삼각 편대' 전략
글로벌 기업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새로운 '돈의 물류망'으로 보고 세 가지 핵심 전략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 내재화 및 수직 계열화: "말이 아닌 행동"의 JP모건
공개적으로 비트코인을 비판해 온 JP모건의 다이먼 CEO와는 달리, JP모건은 2019년부터 자체 예금 토큰인 'JPM 코인'을 개발하여 내부 지사 간 거래에 활용해왔으며, 최근에는 이를 퍼블릭 체인에까지 오픈하며 전통 금융 시스템에 디지털 자산을 가장 깊숙이 통합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발행사 서클(Circle) 역시 자체 체인 개발 및 은행 신탁 인가를 신청하며 발행-네트워크-커스터디의 수직 계열화를 통해 외부 수수료를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 영역 확장: AI 경제의 필수 결제 통화로
스테이블코인은 AI 에이전트 시대에 결제 인프라로서의 효용성을 입증하고 있다. 구글의 제미나이나 오픈AI의 챗GPT 쇼핑 등 AI가 직접 상품을 구매하는 '에이전틱 커머스'가 현실화되면서, 기존 신용카드 체계로는 비효율적인 0.01달러 단위의 초소액(Micro-Payment) 결제 문제가 대두됐다.
김 연구위원은 "AI가 기사 검색이나 정보 수집 시 발생하는 소액 결제에 높은 수수료의 카드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며, 궁극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AI들 간의 거래 기축 통화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인베이스는 이미 AI 에이전트가 자동 결제할 수 있는 '402 X402 프로토콜'을 공개하며 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 자산 토큰화(RWA): 글로벌 완전 경쟁 시장 개막
실물자산 토큰화(RWA, Real World Assets)는 스테이블코인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미래 시장이다. 블랙록은 MMF를 토큰화한 'BUIDL' 상품을 출시했으며, 로빈후드 등은 미국 주식을 토큰화해 유럽 고객에게 24시간 거래를 제공하며, 기존 금융 상품의 지리적·시간적 제약을 완전히 허물고 있다. 이는 한국의 KB MMF와 블랙록의 MMF가 블록체인 위에서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완전 경쟁 금융 시장'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 온체인 금융의 시대: 하나의 '지갑'이 모든 것을 통합
김 연구위원은 이 모든 변화의 종착역으로 '온체인 금융'을 제시했다. 전통 금융 시장(주식, 펀드)과 디지털 자산 시장(암호화폐, 토큰)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면서, 사용자는 하나의 통합된 디지털 지갑(Wallet)을 통해 비트코인을 팔아 즉시 토큰화된 주식을 매수하고, 예금, 대출까지 모든 금융 활동을 수행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연구위원은 "10년 전 삼성페이가 스마트폰 결제를 일상으로 만들었듯, 스테이블코인은 AI와 RWA를 통해 미래 금융 활동의 '습관'을 바꿀 것"이라며, 주도권 확보를 위한 국내 금융권과 정책 당국의 선제적인 전략 마련을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