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크래프톤의 AI 전략은 여타 게임사들과 궤를 달리한다. 기존 업계가 코딩 보조, 그래픽 제작, QA(품질 보증) 등 '제작 공정의 효율화'에 AI를 가두었다면, 크래프톤은 AI를 게임 플레이의 핵심 엔진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AX(AI 전환)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혁신의 선봉에는 크래프톤 산하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렐루게임즈'가 있다. 이들은 AI 기술 그 자체가 게임성이 되는 실험적인 타이틀을 잇달아 선보이며 성과를 증명했다.
- 언커버 더 스모킹 건 : 정해진 선택지 대신 이용자가 자유롭게 입력하는 '자연어'를 AI 기반 NPC(Non-Player Character)가 이해하고 답변한다. 추리 게임의 문법을 완전히 바꿨다는 평가를 받으며 '2024 대한민국 게임대상' 굿게임상을 거머쥐었다. NPC는 게임에서 이용자가 직접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로, 게임 시스템이나 AI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는 등장 인물을 의미한다. NPC는 스토리 진행, 퀘스트 제공, 상점 운영, 전투 참여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게임 세계의 상호작용과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활용된다.
- 마법소녀 루루핑 : 이용자의 목소리, 크기, 감정, 발음을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게임에 반영한다. 단순 음성 인식을 넘어 플레이어의 말투와 감정 상태가 게임 결과에 직결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 마메시스 :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학습한 AI가 NPC(Non-Player Character)로 위장해 유저와 심리전을 벌인다. 이 게임은 참신한 게임성을 바탕으로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흥행 가동에 성공했다.
■ AAA급 대작으로 전이된 AI DNA, '인조이(inZOI)'의 돌풍
실험적 시도는 곧바로 대형 신작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 공개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가 대표적이다. 크래프톤은 엔비디아와 협력해 개발한 AI 모델 'ACE'를 적용, 스스로 생각하고 상호작용하는 NPC인 'CPC(Co-Playable Character, 협력 플레이 캐릭터)'를 구현했다.
CPC는 이용자와 함께 플레이하도록 설계된 AI 기반 캐릭터로, 기존 NPC와 달리 플레이어의 행동과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해 협력·대화·전투 등 다양한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게임사들은 생성형 AI와 대형 언어모델(LLM)을 활용해 CPC가 이용자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전략적으로 협력하도록 구현하며 차세대게임 AI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대사를 반복하는 인형이 아니라, 유저의 행동에 따라 유동적으로 반응하는 세계관을 구축한 것이다. 그 결과 '인조이'는 얼리액세스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100만장 판매를 돌파하며 크래프톤의 새로운 대형 IP(지식재산권) 탄생을 알렸다.

■ '숫자'로 증명된 AI 전략…2025년 PC 매출 1조 시대
이러한 기술적 도전은 재무적 성과로 직결됐다. '배틀그라운드'의 견고한 인기 속에 '인조이'와 '마메시스' 등 AI 기반 신작들이 연달아 흥행하며 PC 부문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실제로 2025년 크래프톤의 PC 부문 매출은 1조1,84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9,418억원) 대비 무려 25.8% 증가한 수치로, AI 기술이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닌 실질적인 매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AI First'를 향한 과감한 베팅…1300억원의 투자 보따리
크래프톤은 올해를 'AI First'의 원년으로 삼고 공격적인 인프라 확충에 나선다. 우선 1,000억 원 규모의 GPU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이는 고도화된 AI 추론과 다단계 계획 수립이 필요한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핵심 기반 시설이다.
여기에 임직원들의 AI 역량 내재화를 위해 매년 300억원의 예산을 별도로 편성했다. 단순 기술 도입을 넘어 조직 전체의 체질을 AI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의지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 프로세스 간소화를 통해 다작 전략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배틀그라운드 단일 IP 리스크를 해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게임 너머 현실로…'피지컬 AI'와 로봇 사업 진출
크래프톤의 시선은 모니터 밖 세상을 향하고 있다. 게임 개발에서 축적한 AI 기술과 모션 캡처 노하우를 로보틱스와 결합하는 '피지컬 AI' 사업에 진출한다.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를 통해 새로운 캐시카우를 발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신설된 CAIO(최고인공지능책임자) 자리에 이강욱 AI 본부장을 선임했다. 또한 미국에 모회사를 둔 로봇 AI 법인 '루도 로보틱스' 설립을 추진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 채비를 마쳤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임 산업에서 쌓아온 시뮬레이션 AI 역량은 피지컬 AI 분야에서 큰 강점이 될 것"이라며 "크래프톤이 보유한 독보적 노하우가 현실 로보틱스와 결합할 때 시너지 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