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대출 차주들의 오랜 권리인 '금리인하요구권'이 인공지능(AI)과 만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AI가 소비자를 대신해 신용 상태를 실시간 분석하고 최적의 시점에 자동으로 금리 인하를 신청해주는 서비스가 본격 가동되면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본인의 신용도가 개선됐음에도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깜깜이 차주'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높은 은행권의 심사 문턱이 실효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AI가 비서처럼 '착착'…마이데이터와 만난 금리인하 요구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이번 '금리인하요구 자동대행 서비스'는 소비자가 마이데이터 서비스에 가입하고 자동 신청에 동의하기만 하면 작동한다. AI 엔진이 차주의 소득 상승, 신용 점수 상향 등 금리 인하 요건이 충족되는 시점을 실시간으로 포착해 은행에 즉시 요구서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현재 하나은행을 제외한 국민·신한·우리·농협·기업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하나은행 역시 상반기 내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 서비스의 최대 장점은 '망각의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차주가 직접 서류를 준비해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앱을 뒤져 신청해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잠자는 권리'를 깨워주는 비서 역할을 수행한다.
■ 은행권의 '속내'…이자 줄어도 고객 잡기가 우선
은행 입장에서도 이 서비스 도입이 마냥 손해는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금리 인하에 따른 이자 수익 감소가 우려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출 부실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차주의 개선된 신용 상태를 적기에 반영함으로써 연체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락인(Lock-In) 효과'가 크다. 현재 1인당 1개의 마이데이터 사업자를 통해서만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은행들은 자사 앱을 플랫폼화해 고객을 묶어두는 전략적 요충지로 삼고 있다. 또한, 과거 수동으로 이뤄졌던 서류 검토 및 심사 과정을 AI로 자동화하면서 인력 운용의 효율성까지 챙기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 '3명 중 1명'만 통과…여전히 높은 심사 문턱
하지만 장점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신청의 편의성'은 극대화됐지만 '수용의 확률'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6대 은행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은 평균 3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대형 시중은행들의 수용률은 더욱 처참하다. 농협은행이 42.9%로 체면치레를 했을 뿐, 국민은행은 26.2%, 우리은행은 17.7%에 그쳤다. 신청자 10명 중 7~8명은 고배를 마신 셈이다. 이정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신청만 간편해지는 것은 반쪽짜리 혁신"이라며 "신용 분석 모형이나 수용 조건 자체를 완화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 거절 사유 분석하고 대안 제시…"수용률 점진적 개선될 것"
은행권은 신청 건수가 일시적으로 폭증하면서 지표상 수용률이 낮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면서도, AI 기술이 결국 수용률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항변한다.
한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단순히 거절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왜 거절됐는지 사유를 AI가 분석해 안내하고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하는 사후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며 "차주가 AI의 분석을 통해 본인의 신용도를 관리하게 되면 수용률도 자연스럽게 우상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디지털 금융의 선두주자인 카카오뱅크의 경우, 압도적으로 많은 신청 건수 속에서도 35% 수준의 수용률을 기록하며 시중은행 평균(31%)을 웃도는 성과를 내고 있다.
AI 금리인하요구 서비스는 금융 소비자의 주권 강화 측면에서 분명 진일보한 서비스다. 하지만 기술이 절차를 간소화했다고 해서 은행의 보수적인 심사 문화까지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단순히 서비스 도입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은행별 수용률 공시를 더욱 투명하게 하고 합리적인 심사 기준이 마련되었는지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AI가 차주를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줄 때, 은행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실효성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