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자본시장의 ‘거버넌스(지배구조)’가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그동안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해온 한국 특유의 오너 경영 체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대주주의 영향력을 차단한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킴으로써,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대주주에게는 ‘안방을 내주는’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대주주가 독식하던 관행에 종지부를 찍을 전망이다. 인수합병(M&A) 시 소액주주들에게도 공정한 가격에 주식을 팔 기회를 보장하는 이 제도는,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 비용의 급격한 상승을 의미한다.
■ 꼼수 승계 대신 ‘정공법’ 선택하는 기업들…자사주가 승부처
규제의 파고가 높아지자 기업들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과거처럼 복잡한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식은 이제 행동주의 펀드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뿐이다. 이에 많은 대기업이 순환출자 고리를 선제적으로 끊어내고 지주사 체제를 강화하는 등 거버넌스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자사주 활용 전략이다. 과거에는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게 넘겨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방어했으나, 최근에는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주주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정공법’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주를 적으로 돌려서는 경영권을 지킬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 행동주의 펀드, ‘기업 사냥꾼’에서 ‘거버넌스 감시자’로
이러한 혼란을 틈타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비효율적인 사업부 정리와 이사회 재구성 등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압박한다.
물론 단기 차익만을 노린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핵심 원인인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수술대 위에 올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투자자들에게는 이러한 지배구조의 변화와 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동성이 새로운 초과수익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경영권 방어와 주주가치 제고는 결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기업이 규제 강화에 맞서 방어적인 수단에만 골몰한다면 시장의 신뢰를 잃고 결국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시장과 주주로부터 인정받는 ‘투명한 가치 경영’에 있다. 주주와 소통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하여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만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무력화하고 경영권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다.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는 대주주와 소액주주가 상생하는 거버넌스의 정립 여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