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온인주 기자 |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아온 라이다(LiDAR) 산업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라이다 제조업체 루미나 테크놀로지스(Luminar Technologies)가 '미국 연방 파산법 챕터11(Chapter 11)' 절차에 돌입하면서, 업계에서는 이를 테슬라의 ‘카메라 중심 자율주행 전략’이 촉발한 구조적 변화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챕터11(Chapter 11)'은 기업이 즉각적인 청산을 피하고, 법원의 감독 아래 부채를 조정하며 영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회생 절차다. 기업은 파산 보호를 받는 동안 채권자들의 강제 추심과 소송으로부터 보호받으며, 구조조정이나 자산 매각, 신규 투자 유치 등을 통해 재무 구조 개선을 추진하게 된다.
■ 루미나, 결국 챕터11… 주가 하루 만에 60% 폭락
루미나는 최근 자발적으로 챕터11 절차를 개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는 하루 만에 60.82% 급락, 1년 전 대비 낙폭은 약 85.2%에 달했다. 회사는 파산 절차 중에도 라이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공급과 사업 운영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법원 감독 하 매각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폴 리치(Paul Ricci) 루미나 CEO는 “기존 부채 부담과 업계의 채택 속도로 인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루미나는 비용 절감과 조직 슬림화에도 불구하고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최근에는 포토닉스 사업부를 퀀텀 컴퓨팅 기업에 1억1,000만 달러 전액 현금으로 매각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 이미 시작된 균열… 볼보, 10년 동맹 관계 종료
이번 파산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었다. 이미 지난해 11월, 볼보자동차가 루미나와의 협력 관계를 공식 종료하면서 시장에는 경고 신호가 감지됐다.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볼보는 루미나와 5년 전 체결한 계약을 취소하며 “공급망 리스크 노출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며, 루미나가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밝혔다.
양사는 약 10년 가까이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고, 볼보는 루미나의 주요 투자자이자 초기 고객이었다. 루미나가 양산 차량 시장에 진입하고, 2020년 SPAC 합병을 통해 상장하는 과정에서도 볼보의 신뢰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상장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루미나는 볼보 외 고객 확보에 실패, 반복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직원 감축과 외주 생산 전환, 윤리 규정 조사, 창업자 CEO 사임까지 이어졌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10월 31일이었다. 볼보는 전기차 EX90·ES90에 루미나의 ‘아이리스(Iris)’ 라이다를 기본 탑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차세대 ‘할로(Halo)’ 센서 도입도 보류했다. 이에 루미나는 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섰고, 센서 공급을 중단했다. 갈등은 결국 결별로 이어졌고, 이는 루미나의 재무적 위기를 가속화한 분수령이 됐다.
■ 테슬라는 라이다를 버렸다… 비용 구조가 승부를 갈라
루미나 사태의 배경에는 자율주행 기술 노선의 변화가 있다. 테슬라는 업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고가의 라이다 센서를 배제하고 카메라 중심(Camera-only) 자율주행 전략을 고수해왔다. 이 선택은 비용 구조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마일당 비용이 약 0.81달러 수준으로, 웨이모의 차세대 모델보다도 낮은 비용으로 평가된다.
반면 라이다 기반 자율주행은 센서 단가 자체가 높아, 상용화 단계로 갈수록 비용 부담이 구조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실험’에서 ‘확산’으로 이동하는 국면에서, 비용 효율성은 기술 완성도만큼 중요한 변수가 됐다는 분석이다.
■ “눈으로 충분하다” vs “눈은 부족하다”… 그러나 시장은 비용을 택했다
테슬라의 전략은 기술 논쟁도 불러왔다. 일론 머스크 CEO는 “인간은 눈으로만 운전한다. 차량도 카메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GM의 ADAS 부문 책임자였던 아미르 알리는 “인간의 시각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며 라이다와 레이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의 판단 기준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기술적 이상(理想)보다 ‘비용·확장성·소프트웨어 중심 구조’가 선택받는 방향으로 자율주행 산업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 남은 과제는 안전성… 그러나 흐름은 바뀌었다
물론 테슬라의 전략이 완전히 검증된 것은 아니다. 현재 오스틴 로보택시 기준 사고당 주행거리는 약 5만 마일 수준으로, 웨이모 대비 안전성 데이터 축적 속도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미나의 파산과 볼보의 결별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자율주행 산업이 본격적인 상용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라이다는 ‘필수 센서’에서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지위가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 루미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까
루미나의 파산보호 신청은 라이다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신호탄일 가능성이 크다. 완성차 업체들이 비용 효율성과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라이다 기업들은 생존 모델을 다시 증명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테슬라의 선택이 정답인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 완성차 업체의 기술 철학이 자율주행 생태계 전체의 운명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