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한 신문사는 야근 기자 대신 AI가 밤새 스포츠 경기 결과를 정리하는 ‘로봇 기자’를 운영한다. 직원들이 퇴근한 뒤에도 기사는 새벽에 자동으로 발행된다. 아침 출근한 기자가 보는 건 자신이 쓰지도 않은 기사다. AI는 피곤하지 않고 커피도 필요 없다. 심지어 휴가도, 퇴근도 없다. 그런 존재와 경쟁한다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피로다.
카페 바리스타는 주문을 성실히 처리한 키오스크 옆에서 커피만 내리고, 콜센터 상담원은 음성봇이 50% 이상의 민원을 응대한 이후 ‘예외 케이스’만을 처리한다. 사람은 점점 보조인력으로 밀려난다. 효율과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으로 기계는 일터의 중앙으로 들어왔고 인간은 그 주변부로 이동했다.
■ AI 시대, 노동의 의미
2023년, 카카오는 ‘AI 경영 효율화’ 정책을 내세우며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AI 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계약직과 일부 지원부서 인력의 재계약을 중단했다. 내부 게시판에는 “AI가 사람을 평가한다”, “사람이 일하던 자리를 AI가 대신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IT 기업 내부에서조차 ‘기술과 사람의 공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였다.
한국고용정보원(KEIS) 보고서에 따르면 AI와 자동화 확산으로 사무직과 단순노무직 등 일부 직군이 대체 위험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사무·판매·단순노무 등은 대체 가능성이 61∼80%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은 향후 10년 내 약 380만 개 일자리가 기술로 대체될 위험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업들은 “AI를 잘 다루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AI가 일자리를 없애는가’가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의 노동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로 향한다.
■ 인간의 일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최근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음악 서바이벌 오디션 〈우리들의 발라드〉에서 차태현이 한 심사평이 화제가 됐다. AI처럼 완벽한 음정과 박자를 소화한 참가자를 제치고, 실력은 다소 부족한 것 같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참가자가 이겼을 때, 차태현이 말했다.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을 본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쪽이 이겼네요.”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만이 가진 불완전함과 진심이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노동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 AI가 계약서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시대지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결정하는 건 여전히 감정, 신뢰, 관계의 영역이다. 노동의 본질은 ‘효율’이 아니라 ‘연결’에 있다.
■ 새로운 갈등, 새로운 질문
AI 시대의 노동 분쟁은 단순한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기관부터 민간기업까지 ‘기술 효율성과 인간 존엄성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한쪽은 “기술은 멈출 수 없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이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제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노동정책은 여전히 ‘고용 유지’ 중심이고, AI 윤리 논의는 ‘프라이버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AI 시대의 노동권’을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다. 단순히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일의 조건인 휴식, 의미,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 갈등은 멈춤이 아니라 진화의 신호다
AI는 파업하지 않고, 임금 인상도 요구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그에 비해 사람은 멈춰야 하고, 쉴 줄 알아야 하며 때로는 부당함에 맞서 싸운다. 그렇게만 보면 로봇이 훨씬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시장은 이 냉정한 효율의 논리를 사랑하고, 데이터는 감정보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한 ‘효율의 단위’가 아니다.
최근 논의되는 주 4.5일제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던진 ‘인간 선언’일지도 모른다. 더 많이 일하기보다, 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 쉼이 사치가 아닌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 노동계와 경영계가 팽팽히 맞서는 그 틈에는 결국 “기계의 속도와 인간의 리듬”이 충돌하는 갈등의 진원지가 있다.
기계는 완벽할 수 있지만 인간은 느리고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공감이, 연대가, 그리고 삶의 온기가 있다. AI는 결코 피곤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도 고생 많았지?”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일터로 간다.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서.
< 다음 이야기는 ‘이념 갈등’이다. 환경, 지역, 계층을 가로지르던 모든 긴장은 결국 서로 다른 믿음과 가치의 대립으로 모인다. 진보와 보수, 변화와 안정을 둘러싼 논쟁은 더 이상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공의 합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다.>
고은영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