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이준오 기자 | 살아서 내 사망보험금을 쓰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망보험금 유동화제도란 종신보험 일부를 생전에 연금 서비스로 전환해 노후 생활비로 쓰는 제도로 10월30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가입금액의 일정 부분을 자동 감액해 연금 등의 방식으로 해약환급금의 차액을 지급하므로 계약자별로 해약환금금이나 유동화 조건이 상이하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3,000만원 이상 일반 사망 보장일 경우 신탁업자를 보험 수익자로 변경한 뒤, 신탁 수익자를 처나 직계존비속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굴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신탁회사가 자산운용사처럼 보험 가입자의 보험금을 운용한 뒤, 가입자가 미리 정해둔 수익자에게 나눠주는 구조다.
연금 개시 시점이나 수령 기간 등 유동화 조건 결정에 어려운 노령층의 경우 보험금청구권을 보험회사에 맡기는 신탁도 투자 옵션으로 고려할 만하다. 살아 있을 때 보험사에 처와 자식에게 사망보험금을 어떻게 나눠줄지 방식을 설정해 운용·관리하는 것이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위탁받은 자산을 운용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국내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주요 생명보험사들이 관련 상품을 내놓기 시작한 만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지난해 말 도입 초기에도 경제관념이 부족한 어린 자녀에게 상속재산을 한 번에 물려주지 않고 매년 또는 매월 나눠줄 수 있다는 이유로 주목받았다. 금융당국이 사망보험금을 살아서도 쓸 수 있도록 규제를 풀면서 신탁 상품과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금융권 전망이 나온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돌발 상황이 생겨도 처자식이 보험금을 생전 의도대로 사용할 수 있고 예기치 않은 상속 분쟁에 휘말리는 일을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가입자가 판단 능력이 온전할 때 수탁자를 지정하고 자산 운용 방식과 사용 목적을 미리 정해둘 수 있는 상품이다. 이는 고령의 독거 부부나 은퇴를 앞둔 가입자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국내 보험금청구권 신탁 시장 선두주자인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이 실적을 내고 있으며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생명보험사들이 관련 상품을 잇따라 출시 중이다.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지난달 말 기준 누적 보험금청구권 신탁 계약건수는 1,110건, 계약금액은 3,554억원이다. 교보생명의 지난 8월 말 기준 계약건수는 615건, 계약금액은 854억5,000만원이다. 한화생명 , 미래에셋생명 , ABL생명 등이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흥국생명은 관련 시스템 개선 작업을 거친 뒤 다음 달부터 상품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처·자식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가입자의 치매 발병 후에도 원활하게 보험금을 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수료 부담이 다소 높은 문제점도 유념해야 한다. 사망보험금 유동화 상품과 관련해 계약·집행·관리 등을 아우르는 신탁 수수료는 1%대다.
최근 주요 금융그룹이 비은행 이자수익 확보 차원에서 시니어 고객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는 물론, 보험업계 전반적으로 신탁 포트폴리오 확대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생명은 2007년 종합신탁업 자격을 일찌감치 취득해 단순 사망보장뿐 아니라 유언대용·치매·증여 등 다양한 신탁 포트폴리오와 인력, 조직을 갖춰왔다. 교보생명도 지난해 재산신탁 인가를 받으며 금전신탁과 재산신탁을 아우르는 종합재산신탁 사업 체계를 구축했다.
보험 전문가들은 사망보험 유동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망보험금으로 제한된 신탁 대상을 질병·상해보험금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3,000만원이라는 최소 수탁 금액 규제를 풀고 약관대출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보험설계사에게 신탁 투자 권유 대행인 자격을 부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신탁업을 보험사의 부수 업무로 지정하는 등 켜켜이 쌓인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업계는 "엄격한 신탁 대상 제한을 사망보험금에서 질병·상해보험금까지 확대하고, 최소 수탁 금액(3,000만원)에 대한 법적 제한 규정을 폐지해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수탁액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