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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3 (월)

[고은영 칼럼] '정책 롤러코스터'에 지친 아이들_공정은 어디에 있는가

-4편 교육분쟁-

4편 교육분쟁

 

정책과 입시, 그리고 부모와 학생 간 기대가 섞여있는 학교는 작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제도의 변화 속에서 공정성과 신뢰가 시험대에 오르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정권 바뀔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야 한다. 이런 교육 갈등은 단순한 제도 문제가 아니라 세대와 계층, 사회적 자본이 엮인 복합적 갈등이다.

 

목동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서 있으면 가끔 이런 대화가 오간다.

“언니네는 정시야, 수시야?” “우리아이는 아직 중1인데 뭘 벌써부터 그런걸 생각해요!”

웃으며 대답했지만 내심 불안했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황급히 ‘정시 확대’, ‘수시 축소’를 검색해본다.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정책 변화에 더 예민해졌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제도를 좇다 보면 너무 복잡해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이러한 불안의 근원은 단순히 제도가 복잡해서가 아니다. 끊임없이 바뀌는 제도 속에서 혹시나 내가 무지하여 아이를 제대로 고등학교, 혹은 대학에 보내지 못했다는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할까봐 불안은 커져만 간다.

 

정시의 공정, 그러나 그늘도 크다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의 63%가 “정시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정시의 '순수한 능력 평가'에 대한 기대는 높지만 현실은 그 이상과 간극이 크다. 정시 확대 요구가 높을수록, 사교육 의존을 부추기고 특정 지역 학원가가 몰리는 구조를 만들었다. 소위 목동, 대치 키즈들은 대부분 ‘학원 유목인’ 생활을 하고 있고, 그 부모들은 월급의 반 이상을 학원비로 지출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시는 ‘순수한 능력 평가’라는 명분 아래 누가 더 많은 자원과 정보력을 가졌는지가 실질적 변수가 된다.

 

수시, 다양성 아래 숨겨진 격차

수시는 학생부, 추천서, 자기소개서 등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중시한다. 학교활동이나 동아리 활동도 중요한 평가요소로 작용한다. 학업성적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전형으로 알려져있지만, 이조차도 부모의 정보력과 자본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제도의 특성상 경제적·사회적 배경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은 단순한 빈정거림이 아니다. 시험 이전부터 계층과 배경의 불평등이 작동하고 있다는 경고다

 

제도 실험의 현실: 학점제와 내신 개편

새로운 제도 실험들이 무대에 올라서고 있다. 고교학점제, 내신 등급 단순화 등이다. 학점제는 학생에게 과목 선택권을 주고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는 이상을 말하지만, 현실은 대학 요구 과목 중심이 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 제한, 교사들의 업무량 등가 등의 한계가 나타나면서 아직도 추가보완책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신 등급 단순화 발표는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며 변별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학생·학부모·교사는 “정시 늘리자 → 수시 늘리자 → 학점제 도입 → 내신 바꾸자”라는 정책 롤러코스터에 매번 올라탄 승객처럼 지쳐가고 있다.

 

중고등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다 본다는 ‘티쳐스’ 라는 프로그램은 이 혼란을 실제 사례로 종종 보여주고 있다. 어느 의대 지망생 학생은 중학교 시절 내내 전교 1등을 유지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과목 선택, 내신 등급, 대학 요구 사항 등이 서로 얽히며 국어·영어·수학 모두 2등급을 받게된다. 입시 상담 전문가는 학생에게 “현재 내신으로는 전국 어느 의대도 가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사실 난 약대를 가도 괜찮은데...” 라는 아이의 속마음을 듣던 아버지는 “우리가 목표한 게 의대잖아. 목표가 의대면 의대만 봐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방송이 끝나고도 밥 먹다 멈칫거리며 우울해하던 그 학생의 얼굴이 계속 어른거렸다.

제도의 취지는 모든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학업 능력이나 정보·자원이 충분한 학생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열심히 했지만 정보와 선택권에서 조금 뒤처진 학생은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모든 혼란의 중심엔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있다. 정책이 계속 바뀌면 제도는 실험실 속 설계도처럼 느껴지고, 그 실험의 대상은 아이들이며 피해는 부모 몫이다. “정시는 기회, 수시는 과정”이라는 단순 구도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해법을 향하여 — 학생과 삶 중심의 교육으로

우리는 아이들을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 현실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 주도형 입시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도입하면 학점제 과목 선택, 내신 등급 변화, 대학 전형 반영을 가상으로 경험하면서 “내 선택이 대학에 어떤 영향을 줄까?”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체험은 불안과 사교육 의존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입시 결과와 데이터 공개를 통해 학생과 부모가 정보를 기반으로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등급 단순화나 학점제 과목 선택 등 변화의 효과를 학교·지역별 통계로 제공하면 현실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이에 더해, 미래형 역량 중심 평가 시범학교를 확대하여 창의력·문제 해결력·프로젝트 수행 능력 등 학생의 다양한 강점을 실제로 인정받는 경험을 먼저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제도의 신뢰와 기대감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이가 알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일인 ‘공교육이 바로 서는 일’이다. 학교가 안정되고 신뢰를 얻어야 교육이 살아난다. 장기간에 걸친 코로나 위기 속에서 학교 수업이 무너지고 사교육에 의지하면서 공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실감했다. 어느 정권, 어느 지역, 어느 계층이든 상관없이 학생들이 자신의 선택과 노력으로 성장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육이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즐거운 과정이 되는 날까지, 우리는 변화를 지켜보고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교육 갈등은 결국 사회의 단면이다. 교실은 제도의 실험실이자, 세대와 계층, 가치가 교차하는 거대한 현장이다. 공정과 기회의 문제는 입시에서 시작되지만, 일터와 세대, 나아가 사회 전반으로 이어진다.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은 공존의 방식이다.

 

 

다음 편에서는 교실을 넘어, 일터와 세대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동갈등’을 이야기해본다.

 

고은영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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