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2024년 여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타임라인은 한 여성의 죽음으로 유독 뜨거웠다.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노동자가 앞다투어 올리는 추모의 글들. 그 문장들 사이에는 공통적으로 '밥'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다. 경제 매체의 시선으로 볼 때, 한 개인의 죽음이 이토록 광범위한 계층의 심리적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셜록(www.neosherlock.com) 최규화 기자는 이 지점에서 '부채감'을 느꼈다. 혜택을 입어서 미안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지켰던 치열한 현장에 단 한 번도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이었다. 이것이 바로 최근 출판계에서 주목받는 신간, 유희의 생애를 복원한 기록물의 시작이다. 저자는 1주기 추모제를 기점으로 '유희의 사람들' 15명을 심층 인터뷰하며, 단순한 전기가 아닌 우리 사회 연대의 원형을 복원해냈다.
■ '먹어야 이긴다', 30년 밥 연대의 경제적·사회적 효용
유희의 밥 연대는 1990년대 초 전국노점상연합의 좁은 사무실에서 태동했다. 자본도, 자원도 부족했던 가난한 활동가들에게 밥은 생존 그 자체였다. 그녀는 주방으로 들어갔고, "김치찌개 하나로도 동지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995년 열사들의 죽음을 거치며 그녀의 주방은 영안실과 농성장으로 확장됐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음식의 배분이 아니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녀의 밥상은 '투쟁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인프라였다. 장기화되는 농성 현장에서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2017년,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탄생한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는 이러한 연대의 정점이다. 배우 김의성을 비롯한 시민들의 펀딩은 유희라는 플랫폼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발로였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외상(Trauma)이 깊은 곳에 그녀의 밥차가 도착했을 때, 그곳은 비극의 현장에서 '환대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강철 여인과 트로트 가수, '유희'라는 다층적 페르소나
기록 속의 유희는 입체적이다. 원칙에 어긋나면 동료에게도 매서운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원칙주의자였고, 공권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싸움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투쟁의 엄숙주의에 함몰되지 않았다. 오렌지색 앞치마를 벗고 반짝이 옷을 입으며 트로트를 부르던 그녀는 현장의 긴장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문화적 기획자'이기도 했다.
유희에게 밥과 노래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립된 개인을 광장으로 끌어내는 매개체였다. "아줌마가 아니라 동지이기에 왔다"는 그녀의 선언은, 시혜와 동정의 관계를 거부하고 대등한 '동료 관계'를 설정하는 현대적 연대의 모델을 제시했다.
■ 암세포도 꺾지 못한 고집, '하늘'이 된 마지막 성찬
2022년 췌장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 앞에서도 그녀의 밥차는 멈추지 않았다. 항암 치료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새벽 4시면 솥을 걸었다. "내가 안 왔으면 추운 데서 덜덜 떨었을 텐데"라고 웃어 보이던 그녀의 말년은, 자신의 삶을 타인을 위한 도구로 온전히 내어준 성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녀는 2024년 6월 세상을 떠나 모란공원에 안치됐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5년 제32회 전태일노동상 공로상 수상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좋은 보도상' 선정은 우리 시대가 그녀의 삶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응답이다.
유희의 묘비명 "밥은 하늘이다"는 그녀의 평생 철학을 관통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고. 유희가 지은 밥은 비록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수평적 연대'의 정신은 기록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구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