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국가 철도망 확충의 핵심인 신규 열차 도입 사업이 특정 업체의 부도덕한 계약 이행으로 인해 멈춰 섰다. 국토교통부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9149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은 다원시스에 대해 사기죄 등의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12월26일 밝혔다.
■ 2년 넘게 감감무소식... 국민 발 묶은 '납품 미이행'
코레일은 지난 2018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다원시스와 ITX-마음 차량 474량의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2차 계약분 358량 중 무려 218량이 납품 기한을 2년이나 넘긴 현재까지 인도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체결한 3차 계약분(116량)이다. 계약 후 1년 6개월이 지났음에도 사전 설계조차 완료되지 않아 ‘무기한 지연’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
■ 선급금 ‘돌려막기’와 생산 능력 기만
국토부 조사 결과, 다원시스의 파렴치한 경영 실태가 드러났다.
해당 차량 제작에 쓰여야 할 선급금 중 약 1,059억 원이 이전에 계약한 다른 차량 제작비로 전용됐다. 이른바 ‘예산 돌려막기’다. 3차 계약을 따내기 직전, 월 생산량을 일시적으로 3배(4량→12량) 늘려 보여준 뒤 계약 체결 직후 납품을 중단하는 기만책을 썼다. 기술 제안서에 명시했던 생산라인 증설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며, 필수 자재와 부품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상태였다.
부품 수급난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영 상황이 악화되자 무리하게 선급금을 전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원시스(Dawonsys)는 1996년 설립된 전력전자 산업기기 전문기업으로, 핵융합 전원장치와 플라스마 사업을 통해 성장한 뒤 2010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후 2015년 서울교통공사 2호선 전동차 수주를 기점으로 철도차량 제작 사업에 본격 뛰어들며 현대로템이 독점하던 국내 철도차량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중견기업이다.
하지만 최근 ITX-마음(EMU-150) 등 국가 간선 열차 납품 과정에서 기술력 한계와 자금난설이 불거지며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국가 예산인 선급금을 다른 차량 제작에 유용한 '돌려막기' 정황과 계약 유지를 위해 생산 능력을 조작한 사기 혐의가 제기되면서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업계에서는 다원시스의 이번 사태가 공공 조달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린 중대 사건으로 보고 있으며,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철도차량 제작 면허 유지와 공공 입찰 참여 자격 박달 등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철도차량 시장을 현대로템과의 양강(혹은 다원시스 포함 3강) 체제로 재편하려던 주역이었으나, 다원시스는 이번 사태로 기술 및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었다.
철도 업계 관계자는 "다원시스가 신뢰를 잃으면서 시장의 무게추가 다시 현대로템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며, "그동안의 저가 경쟁이 끝난 자리에 품질과 납기 중심의 시장 질서가 재편되며 대형 제작사들의 수익성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국토부의 초강수... "사기죄 성립 가능성"
국토부는 이번 사안이 단순한 업무 과실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법률 자문 결과, 선급금을 목적 외로 사용하고 생산 능력을 속여 계약을 체결한 행위가 형법 제347조(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토부는 감사권의 한계를 넘는 강제 수사를 위해 사법 기관에 사건을 넘겼다.
국토부는 수사와 별개로 코레일의 계약 관리 부실 여부에 대해서도 고강도 감사를 진행한다. 9천억 원대의 대규모 계약이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된 배경에 위법하거나 부당한 업무처리가 있었는지 엄정하게 따져보겠다는 의지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발주 사업에서 이 같은 기만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