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JTBC 드라마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연출 조현탁, 제작 SLL(Studio LuluLala))는 평범한 직장인의 애환을 넘어, 한국 사회가 직면한 중·장년 고용 붕괴와 노후소득 불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김낙수 부장(배우 류승룡)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의 산물이다. 이 구조는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 조기퇴직이 ‘정상 경로’가 된 노동시장
한국의 주된 일자리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 정년(60세)보다 7년 이상 빠르다. 문제는 이 간극을 메워줄 안정적 소득 경로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중·장년 다수는 퇴직 후 곧바로 2차 노동시장으로 밀려난다. 이 시장은 임금·고용 안정성·사회보험 측면에서 1차 노동시장과 질적으로 다르다.
특히 대기업 희망퇴직은 개인 선택이 아니라 조직 차원의 비용 구조 조정이다. 고임금·고연령 인력을 줄이고 저연령·저임금 구조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김 부장은 ‘비용’으로 전락한다. 이는 특정 산업 문제가 아니라 전 산업으로 확산 중이다.
■ “경력이 죄가 되는” 중·장년 재취업 구조
김 부장이 경력을 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 노동시장은 직무보다 연령과 임금 기대치에 민감하다. 사무직 중·장년은 “비싸고, 오래 못 쓸 인력”으로 인식된다. 그 결과 경력직 채용 시장에서 배제되고, 생계형 자영업이나 단순노무로 이동한다.
국가데이터처 '2025 고령자 부가조사'에서 확인되듯 사무·서비스직 재취업자의 69.5%가 직종을 바꾼다. 이는 개인 적응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인적자원 낭비다. 숙련과 경험이 축적된 중·장년 인력이 생산성 낮은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사회 전체 효율도 떨어진다.
■ 노후소득의 착시, ‘집은 있지만 현금은 없다’
김 부장의 자산 구조는 한국 중·장년의 전형이다. 부동산 비중이 70~80%에 달하는 상황에서 은퇴 후 안정적 현금 흐름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국민연금은 기본 안전망이지만, 소득대체율 40%대는 중산층 노후를 지탱하기엔 부족하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장년은 임대소득, 상가 투자, 고수익 금융상품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정보 비대칭과 금융 이해도 부족으로 사기·부실 투자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 이는 단순한 금융 문제가 아니라 노후 빈곤으로 직결되는 복지 리스크다.
■ "73세까지 일하고 싶다”는 생존 전략
고령층의 근로 의지는 매우 강하다. 평균 희망 근로 연령 73.4세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현실 인식이다. 연금만으로는 부족하고, 자산은 유동성이 낮다. 결국 노동이 유일한 안전망이 된다.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다. 상당수 고령층 일자리는 단기·저임금·신체 부담이 크다. 김 부장이 선택한 세차장 창업 역시 ‘자유’보다는 선택지의 부족에서 나온 결정이다. 자영업 실패 시 복지 시스템이 이를 흡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위험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 정년연장, 해법이 아닌 착시가 될 수 있다
정년연장은 표면적으로 중·장년을 보호하는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임금체계 개편 없이 연령만 연장할 경우, 기업은 오히려 희망퇴직을 앞당길 유인을 갖는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정년 60세 이전 퇴직’이 더 고착화될 가능성을 경고한다.
또 다른 문제는 세대 간 갈등이다. 생산성·임금 구조 조정 없이 정년만 늘리면 청년 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중·장년은 오래 일하지 못하고, 청년은 진입하지 못하는 이중 배제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 보건복지 정책의 방향은 ‘연령’이 아닌 ‘경로’
김 부장의 현실이 던지는 정책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퇴직 이후 경로 설계가 필요하다. 정년 이전부터 전환 교육·직무 재설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노후소득 다층화가 시급하다. 국민연금 외에 직역·개인 연금과 연계된 실질적 소득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중·장년 친화적 일자리를 복지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단순 일자리 공급이 아니라 건강·생산성·지속성을 고려한 설계가 요구된다.
김 부장은 묻는다. “우리는 오래 살 준비만 했지, 오래 일할 준비는 했는가.” 한국의 보건복지 정책은 직장생활 생존 이후의 삶, 퇴직 이후의 노동을 정면으로 다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