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인공지능(AI) 반도체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영토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한국 반도체의 심장 삼성전자가 내부 진통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 3개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공동투쟁본부(공투본)가 사측의 파격적인 보상안을 거절하고 실력 행사를 예고하면서, 노조 내에서도 “특정 사업부만 고려한 이기주의적 투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내에서 이번 공동투쟁본부(공투본)를 결성한 3개 노동조합은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옛 DX노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삼성전자노조 ‘동행’이다.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옛 DX노조)는 구미사업장 중심의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하며 출범했으며, 현재는 가전과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DX부문 직원을 주축으로 세를 불리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전삼노)는 한국노총 산하 조직으로, 삼성전자 내 5개 노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주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조합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이번 성과급 투쟁의 핵심 동력을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노조 ‘동행’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을 띠며 대화와 상생을 강조해 왔으나, 이번 성과급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공투본에 합류하여 사측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들 3개 노조는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현재는 '성과급 산정 방식의 투명화'와 '50% 상한제 폐지'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단일 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 ‘성과급 제도화’ 늪에 빠진 교섭...“부회장 직접 나와라”
3월3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공투본은 “성과급 제도의 투명화와 상한 폐지의 제도화 없이는 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노조는 단순히 보상 규모를 늘리는 것을 넘어, 초과이익성과급(OPI, Over Profit Incentive) 산정 방식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로 고정하고 현재 연봉의 50%인 상한선을 영구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초과이익성과급은 기업이 목표 이익을 초과 달성했을 때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성과 기반 보상 체계로, 주로 연간 경영성과와 연동돼 지급되는 변동급 성격의 인센티브를 의미한다.
특히 노조는 사측 교섭위원 전원 교체와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의 직접 등판을 조건으로 내걸며 사실상 대화의 문을 닫았다. 이는 다음 달 평택사업장 집회를 거쳐 오는 5월 총파업으로 이어지는 투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 “메모리만 살고 비메모리는 고사?”... 노조안의 역설
문제는 노조가 제시한 성과급 산정 공식이 반도체 부문 내에서도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노조의 최종 요구안(영업이익 10% 재원, 부문 40%·사업부 60% 배분)을 실제 데이터에 적용해 보면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이 공식을 2025년 OPI 지급률에 대입할 경우, 지난해 47%를 받았던 시스템LSI(Large Scale Integration) 및 파운드리(비메모리) 사업부의 성과급은 11%로 급감하게 된다. LSI는 수천 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반도체 칩에 집적하는 기술을 의미하며,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이러한 고집적 설계를 기반으로 모바일 AP, 이미지센서, 통신칩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개발·생산하는 핵심 사업부로 꼽힌다.
반면 메모리사업부는 상대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구조다. 노조의 투쟁 방향이 '반도체 전체'가 아닌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의 이익 보장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측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메모리 성과가 경쟁사를 앞설 경우 별도 재원을 써서라도 업계 최고 수준을 보장하겠다”는 전향적인 약속을 내놓았으나, 노조는 이를 ‘제도화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일축했다.
■ 외면당한 DX부문...6.2% 임상 인상안도 ‘공중분해’ 위기
노조의 강경 투쟁으로 인해 가장 허탈감을 느끼는 쪽은 가전·모바일(DX) 부문 임직원들이다. 사측은 이번 교섭에서 △6.2% 임금 인상 △최대 5억 원 주거안정 지원 △직급별 샐러리캡 상향 등 파격적인 복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조가 교섭 중단을 선언하면서 이 모든 혜택은 확정되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됐다. 전체 조합원의 약 22%를 차지하는 DX부문 목소리가 성과급 상한 폐지라는 'DS부문용 의제'에 가로막혀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노조 지도부가 파업 불참자를 "해고 1순위"로 거론하거나 "참여율 낮은 부서는 개선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압박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도 "민주적 노조가 맞느냐"는 반발이 확산 중이다.
삼성전자는 크게 완제품을 담당하는 DX(Device eXperience) 부문과 부품 사업을 맡은 DS(Device Solutions) 부문의 양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DX 부문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을 생산하는 MX(Mobile eXperience) 사업부를 필두로 TV와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VD(Visual Display) 및 DA(Digital Appliances) 사업부 등으로 나뉜다. 반면 DS 부문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메모리 사업부와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은 파운드리 사업부, 그리고 설계 전문인 시스템LSI 사업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수직 계열화 구조를 통해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제조 역량과 핵심 부품 기술력을 동시에 확보하며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의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 삼성전자 파업 잔혹사: 무노조 경영에서 총파업 위기까지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의 양상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2022년 삼성전자는 창사 51년 만에 노조가 처음으로 파업권을 확보하며 긴장이 고조됐다. 당시에도 임금 인상률을 두고 대립했으나,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에 극적으로 합의하며 실제 파업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2024년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 주도로 창사 이래 첫 파업 성격의 '단체 연차 사용'이 단행됐다. 당시 생산 차질은 미미했으나 '무분규 사업장'의 신화가 깨지는 계기가 됐다.
2026년 현재는 임금 인상을 넘어 성과급 산정 방식의 '영구적 변경'을 요구하며 생산 라인을 볼모로 잡는 '총파업' 단계에 진입했다. 과거의 파업 시도가 선언적 의미가 강했다면, 이번에는 AI 반도체 공정의 복잡성을 이용해 실질적인 타격을 주려는 의도가 짙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경제에 대한 '자해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연봉 1억5000만원 수준의 초고임금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복지안을 걷어차고 오로지 성과급 제도 변경만 외치는 것은 '나만 살자'는 식의 이기주의”라고 꼬집었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약 35%를 담당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AI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면 10년 뒤를 보장할 수 없는 절박한 시점에, 노조가 공장을 멈추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국민적 공분을 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발목을 잡을 때가 아니라,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해 뛰어야 할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