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한국 경제의 성적표인 경상수지가 또 한 번 역사를 썼다. 반도체라는 초강력 엔진을 단 한국 경제는 설 연휴로 인한 조업일수 감소라는 악재마저 뚫어내고 월간 기준 역대 최대 흑자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 산업들이 역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반도체 외골수’ 성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반도체 독주곡’... 전년比 196% 솟구친 경상수지
한국은행이 4월8일 발표한 ‘2026년 2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 2월 경상수지는 231억 9,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종전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 12월(187억 달러)을 불과 두 달 만에 50억 달러 가까이 앞지른 수치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무려 195.8% 폭증한 수치로, 한국 경제가 34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쾌거를 이뤘다.
흑자 폭을 키운 일등 공신은 단연 상품수지(233억 6,000만 달러)다. 수출은 703억 7,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9.9% 늘었다. 특히 IT 품목의 파괴력이 압도적이었다.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57.9%, 컴퓨터 주변기기는 183.6%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수출액을 끌어올린 결과다.
■ ‘그늘진 非IT’... 승용차·철강 일제히 뒷걸음질
화려한 총량 지표 이면에는 산업별 극심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IT 품목이 103.3% 폭증하는 동안 비IT 품목 수출은 오히려 5.4% 감소했다.
그간 한국 수출을 지탱하던 승용차(-22.9%)와 기계류·정밀기기(-13.5%)가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고, 화공품(-7.4%)과 철강제품(-2.7%)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도체가 수출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자동차와 중화학 공업 등 실물 경기의 기틀이 되는 산업들은 글로벌 수요 둔화와 경쟁 심화로 고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별로는 전 권역에서 고른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동남아(54.6%)와 중국(34.1%) 시장의 회복세가 뚜렷했으며, 미국(28.5%) 수출도 탄탄한 흐름을 이어갔다.
■ 서비스 수지 적자 개선 여행 성수기 종료 효과
서비스 수지는 18억 6,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으나, 전월(-38억 달러)에 비하면 적자 폭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겨울방학 해외여행 성수기가 지나가며 출국자 수가 감소한 영향이 컸다. 여행수지 적자는 12억 6,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약 5억 달러가량 개선됐다. 지식재산권 사용료 및 기타 사업서비스 수지에서도 흑자가 발생하며 서비스 수지 방어에 기여했다.
< 주요 시점별 경상수지 추이 > (단위 : 억불)
| 구분 | 2025년 2월 | 2025년 12월 (기존 1위) | 2026년1월 | 2026년 2월 (잠정) | 전년 동월 대비 |
| 경상수지 | 72.3 | 187.0 | 56.3 | 231.9 | +195.8% |
| 상품수지 | 68.5 | 188.5 | 60.1 | 233.6 | 역대 최대 |
| 서비스수지 | -15.2 | -25.4 | -38.0 | -18.6 | 적자폭 축소 |
| 본원소득수지 | 25.1 | 30.2 | 41.5 | 24.8 | 소폭 감소 |
■ 엇갈린 금융계정...외국인 ‘역대 최대’ 주식 순매도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금융계정 내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 흐름이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 시장에서 무려 132억 7,000만 달러(약 18조 원)를 순매도하며 대거 빠져나갔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한은 관계자는 “국내 주가 상승에 따른 대규모 차익실현 매물과 AI 산업 과열에 대한 경계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역대급 경상 흑자 소식에도 불구하고 자본 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팔자’를 선택하며 국내 증시의 상단이 제한된 배경이다.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 역시 미 증시 조정 우려에 따라 103억 9,000만 달러를 기록, 전월보다 증가 폭이 둔화됐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경상수지 신기록이 ‘착시 현상’을 동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가격 상승과 AI 특수라는 외부 요인에 의존한 성장이기 때문이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반도체 편중 현상이 이토록 심화된 것은 향후 반도체 사이클이 꺾일 때 한국 경제가 받는 충격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의미”라며 “비IT 부문의 경쟁력 강화와 수입 구조 안정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지금의 최대 흑자 기조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역대 최대라는 타이틀은 달았지만, 산업계 전반으로 온기가 퍼지지 않는 ‘반쪽짜리 호황’에 대한 한국은행과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