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국내 주요 대기업 상당수가 내년도 투자 계획을 여전히 확정짓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연말이면 다음 해 투자 전략이 윤곽을 드러내는 점을 고려하면, 급격한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가 기업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투자계획’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110곳 중 43.6%가 “내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아예 “투자계획이 없다”는 응답도 15.5%에 달했다. 반면 계획을 확정한 기업은 전체의 40.9%에 그쳤다.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한 기업들은 이유로 조직개편·인사이동(37.5%), 대내외 리스크 파악 우선(25.0%), 내년 경제전망의 불확실성(18.8%) 등을 지적했다. 기업 내부 구조조정 이슈와 글로벌 정책 리스크가 동시에 겹치며 의사결정 자체를 늦추는 악순환이 나타난 것이다.
내년도 투자 규모를 확정한 기업 중에서도 ‘보수적 전략’이 뚜렷하다.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기업이 53.4%로 절반을 넘었으며, 투자 축소 계획을 밝힌 기업도 33.3%에 이르렀다. 투자 확대 의사를 밝힌 기업은 13.3%에 그쳤다. 고환율·원자재 가격 상승, 통상 환경 악화 등 대내외 요인이 투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투자 축소 또는 무계획 기업들은 주요 이유로 △부정적 국내외 경제전망(26.9%) △고환율·원자재 가격 상승(19.4%) △내수 침체(17.2%) 등을 꼽았다. 반면 투자 확대로 응답한 기업들은 △미래산업 선점(38.9%) △노후 설비 교체(22.2%) 등 구조적·전략적 목적을 제시했다. 즉 단순 사업 확장보다는 경쟁력 전환과 효율성 확보가 주요 동인으로 나타난 셈이다.
최근 산업 전반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AI 투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응답 기업의 36.4%만이 AI 투자계획을 수립(12.7%)하거나 검토 중(23.7%)이라고 밝혔고, 63.6%는 여전히 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글로벌 기업들이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것과는 대비되는 흐름이다.
기업들이 꼽은 내년 최대 투자 리스크는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공급망 불안’(23.7%)이 가장 높았다. 이어 ‘미·중 등 주요국 경기 둔화’(22.5%), ‘고환율’(15.2%) 순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전기차 관련 규제 강화, 글로벌 물류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가 동시에 기업 활동에 압박을 가하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국내 투자 환경의 애로 요인으로는 ‘세금 및 각종 부담금’(21.7%), ‘노동시장 규제·경직성’(17.1%), ‘입지·인허가 규제’(14.4%)가 지목됐다. 기업들은 정책 개선 과제로 △세제지원·보조금 확대(27.3%) △내수경기 활성화(23.9%) △환율 안정(11.2%)을 요구했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기업들은 단기 경기 변수보다 구조적 불확실성을 더 우려하고 있다”며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세제 개편, 규제 완화, 인력·입지 문제 해결 등 복합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자 환경의 전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기업들의 ‘투자 보류’ 흐름이 지속될 경우 내년 생산·고용·성장률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정책 신뢰 회복과 예측 가능성 제고가 중요해진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