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 무색한 원화 급락…환율 1500원 경고등

  • 등록 2025.12.15 12: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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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달러 수요가 만든 새 환율 국면
서학개미·국민연금이 만든 ‘수급발 고환율’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원/달러 환율이 달러 약세 흐름과 괴리된 채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1500원선 재돌파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번 환율 상승을 전통적인 글로벌 달러 강세가 아닌, 국내 수급 불균형에 기인한 ‘구조적 고환율’ 국면으로 진단한다.

 

■ 환율은 오르는데 달러는 약세…이례적 디커플링

 

12월15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는 1473.7원으로 집계됐다. 야간장에서는 1479원선을 넘기며 1500원선에 바짝 다가섰다. 이달 들어 평균 환율은 1470원을 상회하며, 외환위기 이후 월평균 기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글로벌 달러 흐름과의 괴리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달 들어 1.4% 하락했다. 지난달 말 100선을 하회한 뒤 최근에는 97선까지 내려왔다. 통상 달러인덱스가 하락하면 원/달러 환율도 동반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원화 약세가 심화됐다.

 

■ ‘서학개미·국민연금’이 만든 달러 블랙홀

 

시장에서는 이 같은 디커플링의 핵심 원인으로 국내 달러 수요의 구조적 확대를 지목한다.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투자 확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해외 자산 비중 확대가 동시에 작용하며 달러 수요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 11월 한 달간 해외주식을 55억2400만 달러 순매수했다. 이달 들어서도 2주 만에 11억 달러 이상을 추가로 사들였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들의 해외 대체투자, 기업들의 수입 결제 및 환헤지 수요까지 겹치며 외환시장의 달러 흡수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평가다.

 

김종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환율 상승 요인의 약 70%가 수급 요인”이라며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과 개인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해외 자산으로 이동하면서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 단기 이벤트 아닌 ‘구조적 고환율’ 국면 진입

 

시장에서는 이번 환율 상승을 일시적 변동성이 아닌 중장기적 체질 변화로 보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쉽게 꺾이지 않는 이유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이제 환율은 금리보다 자본 흐름이 좌우하는 국면”이라며 “국내 투자 구조가 바뀌는 한 환율의 하방 경직성은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0월 추석 연휴 이후 환율은 1450원대를 중심으로 한 단계 레벨업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 관세 이슈로 환율이 급등했던 지난 4월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당시와 달리 글로벌 달러 강세라는 명확한 외부 요인이 없다는 점에서 시장의 경계감은 더 크다.

 

■ 당국, 수급 관리에 초점…‘뉴 프레임워크’ 시험대

 

정부와 금융당국도 환율 불안을 단순한 시장 변동성이 아닌 정책 대응이 필요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은행권과 연계해 기업들의 ‘달러 묻어두기’ 실태 점검에 나선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를 중심으로 해외투자 관련 설명 의무와 위험 고지의 적정성,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 유도 마케팅 관행 등을 내년 1월까지 집중 점검할 방침이다.

 

아울러 기재부·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이 참여하는 4자 협의체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동시에 고려한 ‘뉴 프레임워크’ 마련에 착수했다. 우선 올해 말 만료 예정인 외환당국과 국민연금 간 연간 650억 달러 한도의 외환스와프 계약 연장 여부가 주요 논의 대상이다.

 

■ 1500원은 ‘심리적 마지노선’…관리 실패 시 파급력 확대

 

시장에서는 1500원선을 단순한 숫자가 아닌 심리적·정책적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해당 선이 뚫릴 경우 수입 물가와 물가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환율 전문가들은 “이제 환율 안정의 핵심은 달러 강세 여부가 아니라 국내 수급 관리”라며 “국민연금과 해외투자 자금 흐름에 대한 정교한 관리 없이는 고환율이 상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은국 기자 ket@k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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