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온인주 기자 | 엔비디아 (NVDA)가 삼성전자(005930)가 투자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그록(Groq)’의 핵심 기술과 인력을 사실상 흡수하는 방식의 ‘우회 인수’에 나섰다. 형식은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이지만, 업계에서는 반독점 규제를 피하면서 미래 경쟁자를 선제적으로 품은 전략적 거래로 평가하고 있다.
그록은 12월25일 엔비디아와 AI 추론 기술에 대한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을 통해 조나단 로스 CEO를 포함한 핵심 인력 일부가 엔비디아로 이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기술과 인력을 흡수하는 구조라는 해석이 나온다. 거래 규모는 약 200억 달러(약 28조4000억 원)로, 엔비디아 창사 이래 최대 수준이다.
■ 삼성전자가 투자한 그록, 몸값 급등
이번 거래에서 삼성전자의 투자 이력도 주목된다. 그록은 지난 9월 블랙록, 뉴버거 버먼, 삼성전자, 시스코 등으로부터 총 7억5000만 달러를 투자받았으며, 당시 기업가치는 69억 달러로 평가됐다. 불과 3개월 만에 약 200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성사되며 기업가치가 크게 뛰었다는 평가다.
이에 주요 투자자들도 상당한 평가차익 실현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삼성전자의 구체적인 투자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 학습에서 추론으로…AI 반도체 수요의 무게중심 이동
그동안 AI 반도체 시장은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학습(Training) 단계가 중심이었다. 학습은 막대한 연산 능력과 전력을 필요로 해, 고성능 GPU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아 왔다.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 학습용 칩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반면 추론(Inference)은 이미 학습이 끝난 AI 모델이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 질문에 답하고, 예측을 수행하며, 새로운 데이터에 기반해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AI 챗봇, 검색, 추천, 번역 등 일상적인 AI 서비스 대부분이 이 추론 단계에 해당한다.
최근 들어 다양한 AI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데이터센터와 기업 현장에서는 학습 이후의 ‘운영 단계’, 즉 추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GPU 기반 추론은 높은 전력 소모와 비용 부담이 따른다는 점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추론용 칩을 개발하거나 대안을 모색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 그록의 해법, 추론 특화 LPU
그록은 2016년 설립된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추론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AI 가속기 칩 설계에 주력해 왔다. 창업자인 조나단 로스는 과거 구글의 맞춤형 AI 반도체인 텐서프로세싱유닛(TPU) 개발에 참여한 핵심 설계 인력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로, 그록의 추론 특화 설계 역시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록은 추론에 특화된 AI 칩 ‘LPU(언어처리장치)’를 앞세워 주목받아 왔다. LPU는 메모리를 내장한 설계를 통해 연산 효율을 높이고, 전력 소비를 상대적으로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그록 측은 이러한 구조 덕분에 GPU 대비 빠른 처리 속도와 높은 에너지 효율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해 왔다.
■ 엔비디아의 전략, 학습 넘어 ‘추론’까지
엔비디아는 이번 계약을 통해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동시에, 그록이 강점으로 내세워 온 빠른 추론 속도와 효율 중심의 설계 기술을 자사 생태계로 흡수하게 됐다. 이를 통해 AI 학습용 칩 시장에서 확보한 우위를 유지하는 한편, 추론 영역에서도 경쟁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한편, 젠슨황 엔비디아 CEO는 올해 앞선 연설에서 AI 시장의 무게중심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엔비디아의 선두는 유지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비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