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재억 기자 | 전 세계 벤처투자 자금이 인공지능(AI) 분야로 급속히 몰리는 가운데, 투자금의 상당 부분(72%)이 미국에 집중되면서 한국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한국은 AI 벤처투자 유치 규모가 세계 9위에 머물러 선두권 국가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2월17일 OECD AI정책저장소(AI Policy Observatory)의 벤처투자 통계를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OECD AI정책저장소 통계는 AI 기반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과 비상장 벤처기업이 전 세계 벤처캐피털(VC)로부터 투자 유치한 금액을 기준으로 했다.
올해 1~3분기까지 전 세계 AI 분야 벤처투자액은 총 1584억달러로 10년 전인 2015년(400억달러) 대비 약 4배 늘어난 규모다. 특히 전체 벤처투자액에서 AI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0%에서 올해 55.7%까지 증가했다. 생성형 AI가 본격화된 2023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벤처투자의 절반 이상이 AI로 집중되는 추세다.
국가별 투자 유치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AI 분야 벤처투자액 1584억달러 중 1140억달러(72%)가 미국 기업에 투자됐다. 이는 작년 64.4%였던 미국 비중이 더 커진 것이다. 올해 기준 AI 분야 벤처투자 유치 2위는 영국(115억달러), 3위는 중국(90억달러)이 차지했다. 한국은 15.7억달러로 9위에 머물렀다. 이는 미국의 1/73, 영국의 1/7, 중국의 1/6 수준이다.
대한상의 측은 “AI 분야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음에도 국내 유입 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며 “결국 시장 경쟁력과 기업의 매력도의 문제인 만큼 얼마나 많은 유망 AI 기업을 육성해낼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메가딜이라 불리는 초대형 투자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24년에 가장 많은 벤처투자를 받은 기업은 미국의 생성형 AI 스타트업 xAI로 한 해 동안 총 110억달러(약 16조원)를 유치했다. 2위는 빅데이터 전문기업 데이터브릭스(85억 달러), 3위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66억달러)로 상위권을 모두 미국 스타트업이 차지했다.
개별 기업 기준으로 미국 기업 다음으로 많은 투자를 유치한 AI 스타트업은 중국 기업들이었다. 자율주행 전기차를 개발하는 아이엠 모터스(IM Motors, 13억2000만달러), 딥시크를 개발한 문샷 AI(Moonshot AI, 13억달러) 등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영국에서는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기업 웨이브(Wayve)가 11억1000만달러를 유치했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AI 반도체 기업인 리벨리온(Rebellions)이 1억4000만달러를 유치했다.
AI 스타트업 투자금의 출처가 자국 내인지 해외인지를 비교한 결과 자국 내 벤처투자 시장이 크거나 국가 차원의 지원이 풍부한 미국과 중국은 해외 자본 유입 비중이 낮았다. 한국도 미국, 중국을 제외한 비교 대상국 중 가장 낮은 비중을 기록했다.
해외 자본 유입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영국(87%)으로 전체 투자 유치액의 대부분을 타국 VC로부터 확보했다. 이어 독일(79%), 프랑스(73%) 순으로 해외 투자를 유치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국내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내 여건을 고려한 스타트업 집중 육성과 규제 환경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구자현 KDI 연구위원은 “AI 반도체 팹리스, 피지컬 AI 등 우리나라가 비교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중심으로 유망 AI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LLM 및 AI 활용 서비스 분야에서는 정부의 과감한 선구매를 통해 기업들이 실질적인 트랙 레코드를 쌓아 글로벌 투자 유치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선도적 스타트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모험 자본의 확충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코리아스타트업포럼 부의장)는 “미국에 투자가 집중되는 배경에는 자금력뿐만 아니라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혁신을 가로막지 않는 규제 환경이 큰 몫을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사전규제 및 허가 중심 환경에서는 혁신적 스타트업 탄생이 어렵고 자율주행, 의료, 법률 등 고위험·고수익 분야 AI 스타트업도 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구 변호사는 “데이터 활용 규제, 불명확한 AI 책임 법제 등이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AI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며 “규제가 아닌 혁신 지원에 방점을 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글로벌 AI 경쟁이 머니게임 양상을 보이면서 각국이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승자독식 경향이 큰 AI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3강 국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쟁력과 시장 여건을 고려해 AI 강점 분야를 세분화하고 스타트업을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하고 다양한 사업 모델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규제 시스템 재정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