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피해자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법부의 기만"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 대해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앞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옥시 등의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이 사건의 클로로메틸아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아소티아졸리논(MIT)는 구조와 성분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2014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에 대한 백서에서 PHMG 및 PGH는 명백하게 유해하다는 결론이 나온 반면, CMIT 및 MIT는 폐질환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환경부의 실험 결과,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도 CMIT 및 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 기준은 근본적으로 PHMG 및 PGH 피해사례로부터 도출된 것인데 물질성분이 상당히 다른 CMIT 및 MIT 살균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면서 "CMIT 및 MIT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생 혹은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였고 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면서도 "재판부가 2년 동안 심리한 결과 CMIT 및 MIT 살균제는 유죄 판결을 받은 PHMG 및 PGH 등과는 성분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지난달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각 금고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홍 전 대표는 2002~2011년 CMIT 및 MIT 등을 원료로 만든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안 전 대표는 1995년 7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애경산업 대표를 지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2002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가습기 메이트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웍크 회원들과 피해자들은 이날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수긍할 수 없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법부의 기만"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조 모씨는 "해당 제품을 쓰고 사망에 이르거나 지금까지 투병 중인 우리 피해자들은 과연 무슨 제품을 어떻게 썼다는 것이냐"며 눈물을 흘렸다.
참여연대 장동엽 간사는 "CMIT·MIT의 유해성은 이미 학계에 보고돼있고, 근거도 충분히 있다"면서 "최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윈회법이 개정되면서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이 활동 종료됐는데, 이를 재개정해서라도 진상규명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