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홍진우 기자] 정부는 지난 8월 25일 ‘상법’ 일부 개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과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그룹 관리법) 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공정경제 3법은 다중 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도입, 전속고발제 폐지, 사인의 금지 청구제 도입 등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경제력 남용이 근절되며 금융그룹의 재무 건전성이 확보되는 등 공정경제의 제도적 기반이 대폭 확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재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권을 위축시켜 경제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악법’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보다 오히려 각종 규제와 족쇄로 기업 경영을 더 위축시킨다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전속고발권’ 폐지...공정위 스스로 자초
공정경제3법 중 전속고발권 폐지는 ‘고발 남발, 공정위와 검찰의 이중적인 조사에 따른 기업 부담과 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2018년 11월 1일자 KEF e매거진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주요 내용과 문제점')고 경제인총연합회(이하 경총)는 분석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의 경우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 기소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현행 제도는 기업의 가격·입찰 담합 등 불공정행위가 벌어져도 공정위의 고발이 없이면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는다. 기업이 이 법을 위반해도 공정위 고발 없이는 수사를 하거나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심지어 피해자들조차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동안 폐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기업은 이런 이유로 공정위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고위공직자를 자신의 기업으로 끌어들인다. 이들은 기업을 위해 전관을 내세워 공정위에 로비를 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업에 대한 고발권을 독점하면서 나온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 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에 공정위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폐지 논란에 불을 지폈다. 공정위가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순환출자 강화 해소를 위해 삼성SDI가 처분해야 하는 통합 삼성물산 주식 수를 1000만 주에서 500만 주로 줄여줬다는 의혹 등이 불거졌다. 이런 이유로 공정위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면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속고발권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2017년 대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도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재계, 고발 남발·공정위와 검찰 이중 조사에 따른 기업 부담 반대
전속고발권은 형벌 필요성 여부를 전문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재계 입장이다. 행정적 제재로 규제할 수 있는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서 무리한 형벌 적용을 피하자는 취지라는 설명한다.
헌법재판소도 1995년 공정위의 고발권 불행사에 대한 위헌확인 헌법소원심판청구에서 전속고발제의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말하자면 기업의 문제는 전문성이 있는 기관이 조사를 한 뒤 형사처벌이 필요한 경우 전문기관이 수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재계가 반대하는 이유다. 재계는 공정위의 조사를 거치지 않고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기업에 불만을 가진 개인, 단체, 기업이 무분별하게 고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검찰 조사가 이뤄지면 기업 이미지 훼손 등 부정적인 영향과 조사 과정에서 다른 문제가 불거질 경우 조사가 전방위로 확산하는 것도 재계가 걱정하는 대목이다.
최승재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은 지난달 24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대강당에서 열린 ‘독이 든 성배, 공정경제법 개정을 경계한다’ 토론회에서 전속고발제 폐지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최 원장은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누구든지 기업에 대한 고발이 가능해지는 만큼, 최종적으로 무혐의를 받는 사안이라도 기업의 입장에선 조사·수사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기업활동을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