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모펀드의 역사는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일반사모펀드’가, 이후 2004년 ‘PEF’, 2011년 ‘헤지펀드’가 연이어 도입됐다. 그후 2015년 PEF·헤지펀드 이원화와 더불어 진입규제가 완화됐고, 2018년 사모펀드 규제 일원화가 다시 한 번 추진되며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여줬다. 실제로 금융당국 발표에 따르면 PEF와 헤지펀드 수탁고는 2013년 172.1조원에서 2019년 478.1조원까지 크게 늘었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 사모펀드 시장은 질적은 성장은 이루지 못했다. 결국 자산운용사와 금융사들이 큰 돈을 버는 사이 ‘금융소비자’는 ‘라임사태’라는 거대한 손해에 맞딱뜨렸다.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사명 하에 완화를 거듭했던 사모펀드에도 드디어 규제 강화라는 기조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DLF사태’서 ‘라임사태’까지 터진 후 ‘사후약방문’ 사모펀드 제도 개선·금소법
실제로 ‘DLF사태’로 시작해 ‘라임자산운용’, ‘알펜루트자산운용’,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대규모 환매중단이 이어지자 과거의 ‘사모펀드 활성화 방안’으로 시선이 쏠렸다. 규제 완화에 맞춰 폭발적으로 자산운용사가 늘었지만 이에 대한 관리의 부재로 이번 연쇄 사태가 발생됐다는 시장의 의견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위에 따르면 2013년 84곳이었던 자산운용사 수는 2015년 규제 완화 이후인 2016년 165곳으로 늘었고, 2018년 규제 완화 이후인 2019년에는 292곳으로 증가했다. ‘라임자산운용’ 역시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을 타고 승승장구하던 자산운용사 중 하나였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시작으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강화안을 연달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 최종안, 올해 2월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 발표에 이어 4월 보완된 최종안을 발표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 27일 발표한 ‘사모펀드 제도개선 방안 최종안’은 금융당국의 감독·검사 강화 등을 포함한 ‘위험관리 강화’와 ‘금융소비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불완전판매, 유동성 관리 실패 및 운용상 위법, 부당행위 등에 따른 투자자 보호 문제 등의 부작용이 드러났지만, 모험자본 공급 등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유지시키면서 투자자 보호장치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운용사’의 경우 ▲운용사 내부통제 및 의사결정구조 강화 ▲펀드 재산 평가 공정성 확보 위한 장치 마련 ▲손해배상책임 능력 확충 등이다.
특히 손해배상을 위해 전문사모운용사에 대해서도 공모운용사와 동일하게 최소 영업자본액 이상의 자기자본 유지 의무를 부과했다. 또, 수탁고의 0.03%에 상당하는 금액을 손해배상재원 활용을 위해 추가적립 하도록 했다.
‘판매사’와 ‘수탁기관 및 PBS증권사(Prime Brokerage Service: 증권사가 사모펀드 운용에 필요한 증권대차 등의 서비스를 연계해 종합적으로 업무 제공)’에는 ‘적격일반투자자’에 펀드 판매시 감시 견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책임을 강화했다. ‘판매사’의 경우 펀드 판매시 전 단계에서 투자설명자료의 적정성을 검증하고, 판매 후 투자전력 및 자산운용 방법에 맞게 운용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수탁기관 및 PBS증권사’의 경우 운용상 위법·부당 행위에 대한 감시 기능이 부여되고 레버리지 수준을 평가하고 리스크 수준을 관리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면밀한 모니터링으로 감독 강화에 나선다. 영업보고서 내의 레버리지 현황과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자산운용보고서 등을 추가하고 그 제출주기를 분기별 제출로 단축시켰다. 더불어 운용사 동향, 펀드별 판매동향 등을 바탕으로 사전 예방적 검사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부실 전문사모운용사를 적극 퇴출하기 위해 위법여부 판단주기는 월 1회, 퇴출유예기간은 6개월로 각각 단축시켰다.
동시에 ‘투자의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투자자만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턱이 강화됐다. 적격일반투자자는 최소투자금액 1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레버리지 200% 이상 펀드의 경우 최소투자금액은 3억원 이상에서 5억원 이상으로 올랐다.
또, 판매사별로 달랐던 투자설명자료 기재사항을 표준화하고, 분기별 자산운용보고서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5일에는 9년만에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안’ 일명 ‘금소법’이 9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의 ‘금소법’은 연이어 터진 금융 관련 사태를 두고 그 필요성이 강조되어 온 터였다.
‘금소법’은 ‘제7조 금융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를 통해 ▲금융상품판매업자등의 위법한 영업행위로 인한 재산상 손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금융상품의 소비로 인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신속·공정한 절차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을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다.
반대로 금융사에게는 ‘금융소비자에게 재산에 대한 위해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책무’와 더불어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또, 설명의무 등 영업행위 준수사항 위반시 해당 위반 행위와 관련된 계약으로 인한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100분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제재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서다.
‘사모펀드’ 문턱 높이고 금융소비자 보호할 법 생겼지만…효과는 ‘글쎄’
하지만 사모펀드 제도 개선안과 금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융소비자 보호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사모펀드 개선안 나왔어도 또 터졌다”며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금융 사고시 미국처럼 처벌조항 강화가 핵심인데 그게 없다”고 말해다.
이어 “그게 되지 않는다면 이 사태는 못막는다”며 “엄청나게 자산운용사가 난립하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근본적인 대책은 없고 땜질식이다”라고 덧붙였다.
규제 완화로 비롯된 사모펀드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제도 개선안과 금소법이 근본적인 대책을 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진정한 사모펀드의 대책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집단소송제 그리고 징벌 강화”라며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될 때 이 조항이 빠졌는데 반드시 제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자산운용사뿐만 아니라 판매사까지 연대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다들(가입자들) 라임(자산운용) 뭔지도 몰랐는데 은행 믿고, 증권사 믿고, 결국 판매사 믿고 가입한 것 뿐”이라며 판매사에 대한 책임도 강조했다.
실제로 사모펀드 가입자들은 ‘라임자산운용’이라는 회사보다는 거래하던 은행, 증권사를 믿고 거래했다고 말했다. 거래하던 PB, 창구 직원의 추천에 가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대신증권을 통해 ‘라임펀드’에 가입했다는 A 씨는 가입 당시 직원으로부터 “담보가 확실하고 삼성이나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자산”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한 PB센터에서 근무했다는 B 씨와 김득의 대표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B 씨는 “원래 사모펀드라는 게 본점에서는 판매계약을 하고 판매 지점에 좋은 이야기만 가르쳐준다”며 “판매사는 관리 감독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운용을 어떻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근무 당시 현실을 털어놨다.
김 대표는 “앞으로 엄격한 제도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고객들은 신뢰관계가 있는 PB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사모펀드 피해를 입지 않은 분들은 PB 말을 듣고 또 뭔지도 모르고 체크하라는 데로 체크할 것”이라며 향후에도 피해가 계속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결국 금융정의연대 측은 ‘제2의 라임사태’를 방지 위해서는 미국처럼 강력한 금융사 처벌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김득의 대표는 “우리는 집행유예도 있고 기껏 해봤자 10년, 15년 살고 나오는데 미국은 150년이 나온다”며 “미국은 손해배상도 100억씩 500억씩 나온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불완전판매 혹은 위법행위의 공범인 경우에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판매’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또 미국처럼 책임자에 대한 가석방 없는 실형으로 처벌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주장이다.
지금까지의 개선 방안이 일부 부작용에 대한 개선 수준에 불과하다는 한계도 지적한다. 과징금 역시 이름만 징벌적인 과징금에 불과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