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기세가 거침없다. 지난 두 달간 달러화에 대한 나홀로 독주를 이어오던 원화가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등 아시아 주요 통화의 가치를 기록적인 수준으로 짓누르고 있다. 엔-원 재정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최저치 수준인 100엔당 850원 선 붕괴를 시험받고 있으며, 위안-원 환율 역시 연중 최저 바닥을 새로 쓰는 중이다.
그러나 시장의 기류는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하락 속도가 워낙 가팔랐던 탓에 피로감이 극에 달한 데다, 주요 기술적 지표들이 일제히 달러-원 환율의 '과매도(과도한 원화 강세)' 경고등을 켜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례적인 원화 강세가 임계점에 도달했으며, 엔-원과 위안-원 환율의 바닥 테스트가 역설적으로 '달러-원 환율의 단기 반등'을 알리는 강력한 선행 신호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 18년 만의 최저치 넘보는 엔-원…두 달 만에 120원 수직 낙하
9월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최근 엔-원 환율은 100엔당 850원대 초반까지 밀려났다. 엔-원 환율이 850원대라는 극단적인 저점 레벨로 내려앉은 것은 2024년 7월의 일시적 하락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1월 이후 무려 18년 만에 처음 나타난 진풍경이다.
위안-원 환율 역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같은 날 위안-원 환율은 203위안대까지 미끄러져 지난해 11월 이후 약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 관계자들을 더 놀라게 하는 것은 레벨보다도 '하락 속도'다. 불과 7월 초만 해도 970원대를 넘나들었던 엔-원 환율은 두 달여 만에 120원가량 폭락했다. 위안-원 환율 역시 7월 초 230원 선에서 단숨에 30원 가까이 밀려났다.
특히 위안화 대비 원화의 독주는 이례적이다. 역외 달러-위안(CNH) 환율은 지난해 4월 7.42위안 고점을 찍은 뒤 현재 6.72위안까지 지속 하락(위안화 강세)해 왔다. 전반적인 위안화의 평가절상 흐름 속에서도 위안-원 환율이 급락했다는 것은, 최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가치 상승 속도가 위안화의 오름세를 완벽히 압도했음을 방증한다.
실제 지난 7~8월 두 달간 주요 통화 등락률을 비교해 보면 원화의 '나홀로 랠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기간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무려 13.39% 치솟았다. 반면 같은 기간 엔화 상승률은 1.75%, 위안화는 1.15%에 불과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원화 혼자만 가파른 수직 상승세를 연출한 셈이다.
■ "18년 지켜온 850원 철옹성"…원화 강세 모멘텀 둔화 전망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이처럼 주변국 통화를 압도하는 원화의 원사이드(일방적) 강세가 9월에도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두 달간 엔-원 환율이 극심하게 하락했으나, 원화 강세 압력 자체가 점차 둔화하고 있어 엔-원 환율이 여기서 추가 하락하기는 구조적으로 여의치 않다"며 "적어도 지난 두 달간 시장을 지배했던 숨 가쁜 낙폭 속도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양국의 통화정책 차이를 짚으며 "한국과 일본의 금리 상승이 지닌 '질적 차이'가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면서도 "지난 18년간 굳건하게 지켜져 온 '100엔당 850원'이라는 역사적 지지선은 시장에서 강력한 심리적 방파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 기술적 지표 일제히 '과매도' 경고…달러-원 반등 신호탄 되나
외환 트레이딩 데스크에서는 엔-원과 위안-원 환율의 비정상적인 저점 경신을 두고 '달러-원 환율의 방향 전환(U턴) 시그널'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높다. 원화 가치가 기초체력(펀더멘털) 대비 지나치게 앞서 달렸다는 평가다.
KB국민은행 분석에 따르면 상대강도지수(RSI), 스토캐스틱, 윌리엄스 %R, 볼린저밴드 등 주요 차트 보조지표에서 일제히 달러-원의 기술적 '과매도' 신호가 선명하게 포착됐다. 중기적인 글로벌 달러 약세 방향성이 유효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가파른 하락에 따른 되돌림 반등과 기간 조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외국계 은행의 한 베테랑 외환딜러는 "달러-원 환율이 7~8월 가파르게 밀리는 동안 엔화 등 주변 통화는 횡보하거나 미약한 강세에 그쳤다"며 "현재 외환시장 전반에서 원화는 명백히 과도하게 고평가된 영역에 놓여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달러-원이 9월에도 추가 급락세를 이어가려면 7~8월의 하락세를 지탱해 줄 명확한 거시경제 펀더멘털 스토리가 뒤따라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면서 "최근 국제유가가 다시 들썩이고 있고 저가 반발 매수세 유입 가능성도 커진 만큼, 쏠림 현상이 진정되며 달러-원이 반등 국면으로 돌아설 개연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