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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1 (목)

[이슈] 탄소 0% 배출국 네팔에 떨어진 '기후 核폭탄'

배출 책임 없는 최빈국에 쏟아진 재앙…히말라야 빙하 녹는 속도 2배
세계적 석학 벤저민 호튼의 일갈 "답 아는데 행동 안 해…석학도 좌절"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의 0.02% 미만을 차지하는 네팔이 겪는 현실은 얼마나 끔찍한가. 그들에게는 이 끔찍한 재난에 대한 책임이 눈곱만큼도 없다.”

 

세계적인 기후과학자 벤저민 호튼(Benjamin Horton) 홍콩성시대 에너지환경대학 학장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끝내 격정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월 아시아·오세아니아지구과학학회(AOGS) 최고 영예인 ‘액스퍼드 메달’을 수상하며 인류 생존의 안전지대인 ‘행성 경계(planetary boundaries)’ 붕괴를 경고해 온 석학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무력감과 분노였다.

 

지난 8월28일(현지 시각) 중동계 글로벌 보도채널 알자지라 인터뷰에 출연한 호튼 학장은 최근 네팔을 덮친 히말라야 빙하 붕괴와 대홍수를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기후 핵폭발’로 규정했다. 인류가 초래한 온도 상승이 가장 무고한 지역의 빙하를 터뜨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는 고발이다.

 

■ 0.02% 배출국의 억울한 참상…히말라야 녹는 속도 2배 빨라졌다

 

이번 네팔 참사는 기후변화가 지닌 가장 잔인한 속성인 ‘기후 불평등(Climate Injustice)’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쏟아내는 국가는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등 탄소 다배출 4개국이다. 반면 네팔의 글로벌 배출 비중은 0.02% 미만으로 전 세계 95위 수준에 불과하다. 화석연료를 태워 산업적 번영을 누린 이들은 따로 있는데, 그로 인한 가장 파괴적인 청구서는 문명의 변방에 위치한 취약 계층에게 먼저 날아들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호튼 학장의 분석에 따르면, 고산지대인 히말라야의 기온 상승 속도는 지구 평균의 2배에 달한다. 고지대의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지표면의 태양열 반사율(알베도)이 떨어지고, 열을 더 많이 흡수한 지표면이 다시 빙하를 빠르게 녹이는 ‘악순환의 되먹임(feedback)’ 고리에 빠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히말라야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는 과거 대비 2배로 빨라졌으며, 이미 전체 표면적의 12%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빙하가 녹아 거대한 호수를 형성하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둑이 터지듯 하류를 덮치는 ‘빙하호 붕괴 홍수(GLOF)’의 위협이 일상이 된 것이다.

 

호튼 학장은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면 향후 25~50년 내에 히말라야 빙하의 70~80%가 사라질 것”이라며 “이는 얼음이 그저 얌전하게 녹는 것이 아니라, 네팔과 같이 방파제가 없는 취약 지역에서 파멸적인 재난을 일으키며 연쇄 붕괴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과학적 신중론에 일침… “인간 유발 기후변화 없었다면 불가능한 재난”

 

이날 인터뷰에서 호튼 학장은 “원인 규명이 아직 진행 중이므로 온난화와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단정하기엔 이르다”는 방송 진행자의 원론적 발언을 즉각 반박했다. 관행적인 과학적 신중론 뒤에 숨어 행동을 미루는 태도를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는 “나는 이번 재난을 기후변화와 연결 짓는 데 있어 훨씬 더 솔직해지고 싶다”며 “유럽과 아메리카를 휩쓴 극한 폭염,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기록적 폭우 등 우리가 마주한 재난은 인과관계가 매우 명확하다”고 못 박았다. 온실가스가 대기에 쌓여 열을 가두고, 상승한 기온이 얼음을 녹여 재난을 일으킨다는 기본적 물리 법칙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호튼 학장은 핵심적인 질문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는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이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계가 극한의 재난 현장에서 반복해서 확인하는 결론은 단 하나다.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이 없었다면 이런 규모의 재앙은 확률상 ‘거의 불가능(virtually impossible)’에 가깝다는 점이다.”

 

 

 

■ “문제도 알고 답도 안다”… 유명무실해진 파리협정과 역행하는 정치

 

그가 인터뷰 내내 언성을 높이며 표출한 가장 큰 감정은 ‘지독한 좌절감’이었다. 과학계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정교한 예측 모델을 통해 현 사태를 예고해 왔고, 해결책 역시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튼 학장은 “1990년대부터 개발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예측 모델은 놀라울 만큼 정교했고, 현재 우리가 겪는 단 하나의 결과까지 정확하게 맞혀냈다”며 “해결책 또한 지극히 단순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세 가지 명확한 기둥으로 압축된다.

 

- 화석연료 기반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의존도를 근본적으로 낮출 것

- 산림·해양 등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는 자연 생태계를 적극 보호할 것

- 대기 중에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격리하는 기후 테크(CDR)를 대규모로 개발하고 상용화할 것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시계는 거꾸로 흐르고 있다. 2015년 전 세계가 합의한 ‘지구 온도 1.5도 상승 억제’ 목표는 2024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한계치를 넘어서며 유명무실해졌다.

 

정치적 역주행은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있다.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2017년)에 이어 2025년 재집권 직후 파리협정을 재차 공식 탈퇴했다. 트럼프와 매가(MAGA) 진영은 기후변화를 ‘좌파의 사기극’으로 규정하며 화석연료 채굴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호튼 학장은 방송 말미에 다음과 같이 뼈아픈 일갈을 남겼다. “문제도 알고 해결책도 안다. 행동하면 된다. 그러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우리 과학자들을 계속 이런 방송 스튜디오에 불러 똑같은 문제를 다시 설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수십 년째 같은 경고를 반복해야 하는 과학자로서 엄청난 자괴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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