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거의 3천 년 전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오디세우스를 읽고,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며, 그가 던진 질문 앞에 다시 선다. 위대한 고전은 오래되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다. 수천 년이 지나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위대하다.
호메로스의 세계에는 용기와 지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승리 뒤의 오만이 있고, 욕망과 유혹이 있으며, 잘못된 판단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멈추는 일이 더 어렵고, 이기는 것보다 돌아오는 일이 더 어렵다는 인간의 오래된 진실도 담겨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오늘의 관객을 다시 그 오래된 이야기 속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필자에게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전투와 모험만이 아니었다. 한 가지 질문이었다. 트로이를 무너뜨릴 만큼 뛰어난 지략을 가진 오디세우스는 분명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좋은 리더이기도 했을까.
■ 유능함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오디세우스는 유능하다. 상황을 읽고, 방법을 찾아내고, 위기를 돌파한다. 트로이 목마로 상징되는 그의 지략은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준다.
우리도 흔히 이런 사람을 유능한 리더라고 부른다. 어려운 협상을 성사시키고, 위기 앞에서 빠르게 판단하며, 조직을 목표까지 이끄는 사람이다. 리더에게 이런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결단하지 못하는 선의만으로 국가와 조직을 이끌 수는 없다.
그러나 유능함은 좋은 리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유능함은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만들 수 있다. 권한이 크고 추진력이 강할수록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호메로스의 원전에서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놀라운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난다. 그러나 안전한 곳까지 빠져나온 뒤 동료들의 만류에도 자신의 정체를 밝혀 더 큰 화를 자초한다.
위기를 돌파하는 지략과 승리한 뒤 자신을 절제하는 능력은 다른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권한은 커지지만 자신에게 들어오는 목소리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성공을 거듭한 리더일수록 과거의 성공을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위험도 있다.
그래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확신만이 아니다. 자신의 확신을 스스로 경계할 수 있는 절제다. 리더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잃는 순간이다.
■ 잘못된 항로를 바꾸는 것도 책임이다
30년 넘는 공직생활 동안 수많은 정책과 결정을 지켜보고 직접 참여했다. 공직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결정을 내릴 때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결정한 정책이 현장에서 예상과 다르게 작동하기 시작한 뒤가 더 어려웠다.
정책은 언제나 제한된 정보와 불확실성 속에서 결정된다. 처음부터 모든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처음 내린 결정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리더십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고 방향을 수정할 것인가.
물론 지지율이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원칙 없이 정책을 뒤집는 것은 유연성이 아니라 회피다. 그러나 현장의 변화와 객관적인 결과가 잘못을 보여주는데도 체면 때문에 기존 정책을 고집하는 것 역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원칙은 일관되게 지키되, 방법은 결과에 따라 고칠 수 있어야 한다. 항로를 바꾸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잘못된 항로임을 알면서도 계속 가는 것이 실패다.
정부의 실력도 한 번도 틀리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잘못된 신호를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다른 목소리를 얼마나 진지하게 들으며, 필요할 때 얼마나 신속하게 바로잡느냐에 있다.
■ 정책의 성적표는 국민의 삶에 있다
회의실에서는 정책 하나가 문서 몇 장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국민의 삶에서는 전혀 다르다. 정부에는 하나의 정책이지만 국민에게는 집이고, 일자리이며, 삶의 선택이다. 어떤 정책은 생명과 안전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책은 발표하는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취지였는가도 중요하고 절차가 정당했는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삶은 더 나아졌는가.
리더십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결정을 내렸는지가 아니라, 그 결정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보아야 한다. 결정하기 전에는 다른 의견을 충분히 듣고, 시행한 뒤에는 현장의 결과를 확인하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고칠 수 있어야 한다.
경청과 평가, 수정은 리더의 권위를 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책임 있는 리더십이다. 좋은 제도 역시 리더가 언제나 옳을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리더도 틀릴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잘못된 판단을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견제와 평가의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귀환이다
『오디세이아』의 귀환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이타카로 돌아온다. 그러나 함께 트로이를 떠났던 동료들은 그의 곁에 없다.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결말은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리더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만으로 그 여정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대통령에게는 국민이 있다. 장관의 결정 뒤에는 정책의 영향을 받는 국민이 있다. 기업의 경영자와 조직의 책임자에게도 자신을 믿고 함께 길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리더의 결정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삶을 움직인다. 그렇다면 리더의 성적표 역시 자신의 성공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트로이를 무너뜨리는 데는 지략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타카로 돌아가는 데는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국가 운영도 다르지 않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능력과 나라를 잘 운영하는 능력은 다르다. 법안을 통과시키는 힘과 그 법이 국민의 삶에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능력도 다르다.
리더에게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신의 판단을 검증할 수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힘이 필요하지만 절제도 필요하다. 그리고 정책이 예상과 다르게 작동할 때는 근거를 가지고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유능함과 책임이 만나는 지점이다.
영화 「오디세이」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긴 전쟁과 고난의 항해 끝에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이타카로 돌아온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왕좌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그는 이타카를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맡기고 페넬로페와 함께 다시 바다로 나선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또 다른 항해다.
귀환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치른 대가를 기억하며,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까지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리더십의 성적표는 얼마나 높은 곳에 올랐는지, 얼마나 큰 승리를 거두었는지만으로 매길 수 없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다른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잘못된 판단을 어떻게 고쳤는지, 그리고 자신의 결정이 국민의 삶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트로이를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것은 지략이었다. 그러나 좋은 리더인지는 승리의 순간에 결정되지 않는다. 긴 항해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자신이 지나온 길과 그 길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가. 어쩌면 영화 「오디세이」가 3천 년을 건너 오늘의 리더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리더십의 성적표는 승리가 아니라 귀환이다.

조상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前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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