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 최고의 '씬 스틸러'는 우승팀도, 화려한 슈퍼스타도 아니었다. 대중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팀은 인구 50만 명 남짓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였다.
월드컵 첫 출전이라는 무게감 속에서도 그들은 강팀들을 상대로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과보다 과정이, 점수보다 태도와 조직력이 더 큰 울림을 남겼다. "패했지만 패자가 아니었다"는 평가는 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찬사였다.
이번 월드컵은 우승팀보다 더 오래 기억될 하나의 이야기를 남겼다. 세계는 작은 섬나라를 통해,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했다.
■ 서렌디피티란 무엇인가
'서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를 많은 사람들이 처음 접한 것은 영화 《Serendipity》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영화 속 서렌디피티는 우연한 만남이 운명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 단어는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서렌디피티다.
하지만 진정한 서렌디피티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다. 우연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그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준비된 사람뿐이다. 그래서 서렌디피티는 '우연한 발견'인 동시에 '준비된 발견'이다.
■ 카보베르데는 왜 최고의 서렌디피티였는가
세계는 이번 월드컵에서 카보베르데를 발견했다. 그러나 카보베르데는 갑자기 나타난 팀이 아니었다.
월드컵 본선 참가국 확대는 그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기회가 곧 기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선수들을 찾아 하나의 팀으로 묶었고, 무명의 감독 아래에서 조직력을 다져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흔 살의 골키퍼 보지냐가 있었다. 화려한 스타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선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전에서 연이은 선방으로 팀을 지켜냈고, 오랫동안 꿈꾸던 월드컵 무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물은 한 선수의 감정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기회를 기다려 온 작은 나라의 역사였다.
세계는 작은 섬나라를 발견했지만, 카보베르데는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준비해 왔다. 이번 월드컵은 그 준비를 세상이 비로소 발견한 무대였다.
■ 한국 축구가 남긴 또 하나의 질문
반면 한국 축구는 세계적인 선수들과 풍부한 경험,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팬들이 가장 크게 아쉬워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었다.
승패는 스포츠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팬들은 경기 속에서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에너지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조직의 힘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카보베르데는 부족한 자원을 하나의 팀으로 연결했고, 우리는 풍부한 자원을 하나의 팀으로 충분히 연결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질문은 축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 카보베르데 정신, 결핍을 전략으로 바꾸는 힘
카보베르데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투혼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족한 것을 세지 않았다. 대신 가진 것을 연결했다. 이름보다 헌신을, 개인보다 조직을, 스타보다 시스템을 앞세웠다.
자본은 팀을 살 수는 있어도 팀을 만들지는 못한다. 규모는 조직을 키울 수는 있어도 조직을 위대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카보베르데는 결핍을 약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결핍을 전략으로 바꾸는 힘이 그들을 세계가 주목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결국 어떤 조직이든 위대함은 시스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시스템을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을 발견하고 믿어줄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카보베르데에게는 그런 사람이 보지냐였다.
■ 우리 사회에도 보지냐가 있다
보지냐는 가장 화려한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오래 자신의 자리를 지킨 사람이었다. 이름보다 책임감을 선택했고, 스포트라이트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는 월드컵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보지냐들이 있다. 지방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이름 없는 중소기업에서 기술을 지켜온 장인,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연구원과 기술자, 소방관과 간호사,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책임을 다해 온 수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빛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발견하는 안목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 결국 서렌디피티는 발견이다
카보베르데는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승자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여주었다. 준비된 가능성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서렌디피티라는 사실이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 사회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카보베르데와 보지냐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원이나 더 화려한 간판이 아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안목이다.
어쩌면 이번 월드컵 최고의 서렌디피티는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아니었다. 우리가 그들을 통해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그것이야말로 이번 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값진 발견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상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前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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