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韓경제 퍼펙트스톰"…기획처, 미래컨트롤타워

  • 등록 2025.12.29 1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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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환율 직격탄 진단, 구조적 위기엔 '회색 코뿔소' 경고
권한 나누고 투명성 강조, 초대 장관의 미래 경제 비전 제시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대한민국 경제를 향해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회색 코뿔소(Grey Rhino)'라는 경고등을 켰다.

 

이 후보자는 초대 기획처 수장으로서 12월29일 첫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 경제가 직면한 엄중한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기획 컨트롤타워'로서 기획처의 역할론을 제시했다. 그의 발언을 통해 향후 경제 정책 방향과 기획처의 지향점을 짚어본다.

 

■ 단기 '퍼펙트 스톰' → 고물가·고환율 이중고의 직격탄

 

이 후보자는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퍼펙트 스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퍼펙트 스톰은 여러 악재가 동시에 발생해 거대한 위기를 초래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가 지목한 가장 큰 악재는 '고물가·고환율 이중고'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과 고금리 기조 장기화로 물가는 치솟고 있으며,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미국의 통화 긴축 정책으로 원/달러 환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가계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키고 기업의 수입 원가 부담을 가중시켜 내수 침체와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심화시키고 있다. 서민 경제의 부담은 물론, 기업의 투자와 고용 심리까지 위축시키는 전방위적 위기 상황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 중장기 '회색 코뿔소' → 알면서도 방치된 구조적 위협

 

더 큰 문제는 중장기적 위기 진단이다. 이 후보자는 우리 경제가 '회색 코뿔소' 상황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회색 코뿔소는 발생 가능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간과해 대처하지 못하는 위험을 뜻한다. 그는 인구 위기, 기후 위기, 극심한 양극화, 산업·기술의 대격변, 지방 소멸을 주요 회색 코뿔소로 지목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블랙스완(Black Swan)'처럼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예상치 못한 위기가 아니다. 오랫동안 경고음이 울렸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이제는 경제 시스템 전반을 붕괴시킬 수 있는 치명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기획처가 단순히 단기적 경기 부양책을 넘어,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한 대목이다.

 

'회색 코뿔소'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몸집이 큰 코뿔소가 멀리서 달려오면 그 땅울림과 먼지바람으로 누구나 위험을 감지할 수 있지만, 정작 두려움에 빠지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 피하지 못하고 치명적인 충돌을 유도하는 상황을 뜻한다. 경제적으로는 가계부채 증가, 저출산·고령화, 기후 변화 등 수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경고해온 구조적 난제들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이례적인 사건인 ‘블랙스완(Black Swan)’과 달리, 회색 코뿔소는 위험 신호가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 위기가 실제 재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정보의 부재가 아닌, 의사결정권자의 무관심이나 기득권의 저항 등 ‘대응의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블랙스완(Black Swan)’은 유럽인들이 호주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Black Swan)를 처음 발견하기 전까지 모든 백조는 하얗다고 믿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경제 지표나 과거의 데이터 모델로는 도저히 산출해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서 터져 나오는 위기를 의미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대표적인 블랙스완의 사례로 꼽힌다.

 

블랙스완의 특징은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사고가 터진 직후에는 마치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사후 합리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 발생 시점에는 대비책이 전무한 경우가 많아 시장에 공포 섞인 불확실성을 던지며 시스템을 한순간에 마비시키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이혜훈 후보자가 현재의 위기를 ‘블랙스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은, 인구 절벽이나 양극화 문제가 갑자기 튀어나온 돌발 변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즉,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위험(회색 코뿔소)을 블랙스완 핑계를 대며 방치해온 과거의 관행을 끊고, 이제는 기획처가 정면 대응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회색 코뿔소가 돌진하기 시작하면 이미 때는 늦는다고 경고한다. 멀리서 코뿔소가 보일 때 미리 대피로를 확보하고 구조를 개편하는 ‘전략적 기획’이 필요하며,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인구 위기나 지방 소멸 문제에 있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 '기획과 예산의 연동'… 미래 투자와 지출 효율화

 

이 후보자는 이러한 복합 위기 상황에서 기획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단기적 대응을 넘어 더 멀리, 더 길게 보는 사고가 필요하다"며 "미래를 향한 안목을 가지고 기획과 예산을 연동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처가 예산만 편성하는 부처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기획)을 예산과 긴밀하게 연결하는 '전략적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불필요한 지출을 찾아내 없애고 민생과 성장에는 과감히 투자하는 방식"을 통해 예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국민 세금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 '투명성·민첩성' 강조…초대 장관의 리더십 시험대

 

이 후보자는 기획처의 운영 원칙으로 △더 멀리 보고 길게 보는 기획처 △기동력 있고 민첩한 기획처 △권한을 나누고 참여를 늘리는 기획처 △운용 과정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기획처를 내세웠다.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 환경 속에서 과거의 관료주의적 방식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민주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다.

 

기획예산처는 예산과 기획 기능을 통합한 핵심 경제 컨트롤타워로, 이혜훈 후보자가 초대 장관으로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퍼펙트 스톰'과 '회색 코뿔소'라는 진단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 성과와 미래 비전을 제시할 그의 행보에 한국 경제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초대 기획예산처장’ 낙점된 이혜훈은 누구인가


이혜훈 후보자는 경제학자 출신의 정치인으로, 이론과 실무 정치를 두루 경험한 ‘경제통’이자 ‘정책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랜드(RAND)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거시경제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특히 재정·복지 분야에서의 심도 있는 연구는 그가 예산과 정책을 기획하는 최적임자로 꼽히는 배경이 됐다.

 

제17, 18, 20대 국회에서 활동한 3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 등 경제 핵심 상임위에서 활약했다. ‘경제 민주화’를 주창하며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시장 경쟁 촉진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합리적인 보수 경제 모델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정치권 내에서도 논리적인 언변과 강한 추진력을 갖춘 여장부이자 실무형 리더로 정평이 나 있다.

 

정치적 중량감과 경제학적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서, 신설되는 기획예산처의 기틀을 잡고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 컨트롤타워 수장으로 적격이라는 평가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경제 기조를 예산과 기획 시스템에 녹여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만큼, 향후 인사청문회에서는 그가 제시한 ‘전략적 선순환’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이 후보자는 과거 KDI 시절부터 "재정 건전성과 과감한 투자의 균형"을 강조해왔다. 이번 12월29일 출근길 발언에서 '회색 코뿔소'를 언급한 것도, 수치에만 매몰된 예산 편성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이 걸린 구조적 문제에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평소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은국 기자 ket@k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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